한국이 본격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기업들, 특히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체들의 계속고용 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탄핵정국으로 계속고용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는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기업들은 제각기 중장년 재고용을 통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26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올 11월 기준 60세 이상 고령층의 제조업 취업자는 67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만5000명 늘었다. 특히 70세 이상 초고령층으로 한정하면 1만3000명 증가한 8만명을 기록했다. 20대 이하 청년층 제조업 취업자가 7만3000명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이는 가속화되는 저출생·고령화 흐름과 맞물려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법정정년(60세) 이후에도 계속 일해야 하는 환경에 점차 내몰리는 것이다.
기업들 역시 저출생에 따른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계속고용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고용부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중장년 계속고용 우수사례집’에 따르면 선박부품 제조업체 오리엔탈정공은 숙련 직원들이 정년 이후에도 5년 더 일할 수 있도록 2019년부터 촉탁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식품 제조업체 동원홈푸드도 생산 노하우를 보유한 중장년 조리원들을 계속 고용하고 있다. 현재 최고령 조리원은 75세다. 경력직 조리사와 인턴 조리사를 1대1로 매칭해 도제식으로 업무를 전수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
자체적으로 정년을 연장해 인력 확보에 나선 기업도 있다. 철강 제조업체 동국제강은 정년을 2022년 60세에서 61세로 연장한 데 이어, 내년부턴 62세로 연장한다. 정년이 지나더라도 일부 직원은 촉탁직으로 재고용돼 계속 일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 총괄을 맡고 있는 박응재(60) 기성은 “원래는 정년퇴직했어야 할 나이인데, 2년이 더 연장돼 가족들도 좋아한다”며 “힘닿는 데까지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만이 아니다. 유통업체인 GS리테일은 사실상 정년이 없다. 60세 정년 이후에도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면 1년 단위로 계약 연장이 가능하고, 근무기한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50세 이상 중장년층이라고 한다.
향후 계속고용을 도입하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영범 고용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장은 “기업들이 스스로 필요에 의해 계속고용을 확대하고 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계속고용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계속고용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는 탄핵 정국으로 인해 멈춰있는 상태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계속고용 방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노동계 대표로 참여하는 한국노총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 이후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