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4월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메모리 반도체가 또 다시 기술 장벽을 넘어섰다. 이번엔 낸드다. 2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 즈타이사(社)는 신형 2TB(테라바이트)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최근 출시해 자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판매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SSD는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플래시 기반의 제품으로,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데이터 저장·처리량이 폭증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중국 YMTC가 지난 2020년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했던 128단 낸드플래시 제품. 사진 YMTC
반도체 분석기관들이 일제히 해당 제품을 입수해 분해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쏟아졌다. 초기 성능 테스트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선두권 낸드 업체와 충분히 경쟁 가능한 수준의 속도가 나온 것. 해당 SSD는 중국 YMTC(양쯔메모리)의 5세대 3D 낸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YMTC는 이 과정에서 첨단 패키징 기술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딩 공법을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해 양산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YMTC는 중국 기업 최초로 3D 낸드 적층기술을 활용한 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하는 데 성공한 회사다.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 산하에 있어 사실상 중국 공산당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으로 꼽힌다. 전 세계 낸드 시장에서는 업계 5~6위권으로 꼽힌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 로이터=연합뉴스
2022년 미국은 YMTC를 수출통제 명단에 올리며 모든 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을 막았다. YMTC는 애플 아이폰에 낸드 공급을 코앞에 뒀으나 미 의회가 직접 나서서 겨우 무산시켰을 정도로 기술력 측면에서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달 출범을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에 지명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당시 “애플이 불장난(playing with fire)을 하고 있다”며 강경하게 해당 거래를 막아서기도 했다.
CXMT가 공개한 DDR4 반도체. 사진 CXMT
이에 앞서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CXMT(창신메모리)가 자체 DDR5를 생산해 내수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나오며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아직까지 CXMT가 공식적으로 DDR5 양산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반도체 업계는 이미 기술 측면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상당부분 좁혀진 것으로 본다.
이미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구형 메모리 제품인 DDR4를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에 쏟아내면서 국내 기업들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중국발(發) 메모리 공습으로 D램 시장 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은 물론, 메모리 반도체를 사실상 전량 수입하던 중국 전자업계가 자국 회사의 반도체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 기업의 시장점유율도 위협 받는 모양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마침내 D램·낸드 양쪽에서 메모리 빅3(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위치한 CXMT 반도체 공장. 사진 CXMT
반면 ‘금단의 영역’을 넘어 첨단 메모리 기술 영역에 첫 발을 내디딘 중국 반도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최근 중국의 반도체 기술발전 흐름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고민이 엿보인다. 낸드의 경우 YMTC의 이번 신기술 자체가 대중(對中) 제재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공법이라는 것이다.
현재 낸드 시장에서는 선두권 사이 300단 안팎에서 초고층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적층 단수가 많을수록 성능이 높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 과정에서 한 번에 가능한 많은 층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YMTC는 첨단 반도체 장비를 자유롭게 구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두 개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서로 붙여 낸드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대비 생산 원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SMIC. AFP=연합뉴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SMIC가 도전 중인 첨단 반도체 제조방식 역시 미국의 규제로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 없이 기존 방법을 응용해 이뤄지고 있다.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한계가 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이 대신 잇몸으로 첨단 칩을 만드는 중국 반도체에도 곧 한계가 찾아올 것으로 보는 의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중국 반도체 견제는 변함없을 것”이라면서 “제재를 완전히 뚫고 중국 반도체가 날아오르거나, 밀랍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오르다 추락한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기로에 서는 순간이 언젠가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