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관세청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8.2% 증가한 6837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세웠던 종전 기록(6835억8500만 달러)을 2년 만에 경신했다. 글로벌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에도 성과를 거뒀다.
월간 수출은 2023년 10월부터 15개월 연속 전년 대비 ‘플러스’를 나타냈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출(613억8000만 달러)이 전년 동기보다 6.6% 증가하며 역대 12월 가운데 최대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해제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이 펼쳐지고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터졌지만, 악영향을 이겨냈다는 평가다.
한국의 효자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잘 나간 덕분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전년보다 43.9% 증가한 1419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2년 세웠던 사상 최대치 기록(1292억 달러)을 2년 만에 경신했다. 지난해 4분기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라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는 악재가 발생했지만, DDR5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품목의 수출이 확대하면서 전체 반도체 수출의 호조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반도체뿐만 아니라 무선통신(172억 달러)과 디스플레이(187억 달러), 컴퓨터(132억 달러) 등 모든 정보기술(IT) 품목의 수출이 3년 만에 증가했다.
2위 수출품인 자동차 수출은 지난해 708억 달러로 전년보다 0.1% 감소하긴 했다. 하반기 주요 완성차·부품업체의 파업 등에 따라 생산 차질이 빚어져서다. 그러나 전년(2023년) 수출이 워낙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2년 연속 700억 달러 이상의 호실적을 거둔 것으로 산업부는 평가했다.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은 전년보다 5% 증가한 480억 달러를 기록했다. 하반기 유가 하락세 가운데 원료보다 제품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했지만, 물량 확대로 극복했다. 선박 수출은 18% 늘어난 256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1년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수주했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등이 본격적으로 수출된 영향이다. 바이오헬스 수출은 13.1% 불어난 151억 달러를 찍었다. 바이오시밀러 등 의약품의 호조 덕분이다.
수출 대상국별로 실적을 구분하면 1위는 중국으로 전년보다 6.6% 증가한 1330억 달러였다. 중국으로 3대 수출품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무선통신기기가 모두 선전했기 때문이다. 2위 국가인 미국으로 수출은 전년보다 10.5% 늘어난 1278억 달러를 나타냈다. 7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자동차와 일반기계, 반도체 품목이 주도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미국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으며 세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 전세계 국가 중 한국의 수출 실적 순위(1~9월 세계무역기구 집계 기준)는 6위로 전년(8위)보다 올라갔다. 또한 한국의 지난해 1~9월 수출 증가율(9.6%)은 상위 10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2위인 중국(5.7%)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까웠다.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산업부의 지난해 수출 목표치인 7000억 달러 달성에 실패해서다. 연간 실적 기준으로 세계 5위 수출국인 일본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도 물 건너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수입은 전년보다 1.6% 감소한 63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유가를 중심으로 에너지 가격이 안정화한 덕분이다. 그 결과 무역수지는 518억 달러 흑자를 보였다. 2018년(697억 달러 흑자)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다. 전년(2023년) 103억 달러 적자와 비교하면 621억 달러 개선됐다. 이 개선 폭은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올해 한국 수출호 항로는 험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당장 분기별 전년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 2분기와 3분기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 4분기(4.2%) 한 자릿수로 둔화했다. 또한 보통 수출 계약이 수개월 전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12월 촉발된 정국 불안의 악영향이 올해 1분기 이후부터 현실화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해외 바이어의 방한이 취소되거나 수출 상담이 중단되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현재까진 대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0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것도 악재(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역흑자를 거두는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하고 있어서다. 한국은 지난해 1~8월 기준으로 세계 8위의 대(對)미국 무역흑자국이다. 지난해 전체 대미 무역수지는 25% 넘게 늘어난 556억9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무역보험 공급 규모를 역대 최대 수준인 25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수출 중소·중견 기업에 대해 100조원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수입자금 대출 보증과 환변동보험 한도를 150%까지 상향하고 ▶환변동 보험료를 특별 할인(30%)하며 ▶수출 상담회·전시회를 역대 최대인 300회 이상 개최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