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새해 경제 전망부터 ‘흐림’에 가깝다. 경제성장률을 지난해(2.1%)보다 0.3%포인트 내린 1.8%로 전망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900억 달러에서 올해 800억 달러로 줄어든다고 전망했다. 다만 물가상승률은 지난해(2.3%)보다 0.5%포인트 떨어진 1.8%로 내다봤다.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은 “경제 불확실성이 크다. 하반기로 갈수록 더 어려운 상고하저(上高下低)에 가까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방어를 위해 정부가 내세운 카드는 예산 조기 집행이다. 감액 예산안의 부작용을 속도로 방어하겠다는 의지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감액 예산안이 올해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0.06%포인트 정도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김재훈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예비비와 함께 기금운용계획 변경(2조5000억원), 정책금융(12조원) 확대 등으로 그것(-0.06포인트)을 충분히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예산의 조기·신속 집행에도 불구하고, 1분기 재점검을 거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추가적인 경기보강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추경 편성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김 차관은 ‘추가 경기보강방안에 추경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다양한 방안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경방에는 ▶85조원 규모 민생 사업 예산을 상반기에 70%(1분기 40%)까지 당겨 집행하고(민생경제 회복) ▶외화 수급 개선을 통해 고환율 추세에 대응하는 한편, 증시 밸류 업(가치 제고) 기조를 이어가고(대외신인도 관리)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정부 대응을 지속하는 가운데 수출 지원을 확대하고(통상 불확실성 대응) ▶반도체·조선 등 분야에 정부 지원을 늘리고 석유화학 산업 구조개편에 속도를 내는(산업경쟁력 강화) 등 대책이 포함됐다.
실제 내용은 ‘맹탕’에 가깝다는 평가다. 방향 설정보다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춘 탓이다. 민생경제 회복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은 공감할 수 있지만, 내수를 살리겠다며 추가 소비 소득공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등을 앞세운 건 지난해 경방의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이다. 경방에 단골로 등장하는 관광 촉진책도 쿠폰·휴가비 지원, 홍보 강화 등 세부 실행 방안이 이전과 같다. 새롭거나, 도전적인 정책 또는 시나리오가 실종됐다는 의미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규제 개선, 교육·연금·노동 개혁같이 구조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청사진도 빠졌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6개월 전 야심 차게 내놨던 역동경제 로드맵도 희미해졌다. 기재부는 역동 경제 175개 과제 중 26개는 이행을 마쳤고, 140개는 정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체제인 만큼 공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상황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책 추진 동력도 상실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 여전한 데다 탄핵 정국까지 겹쳐서다. 최근에도 반도체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 상속세 개편 등 여야 합의가 필요한 과제가 줄줄이 국회에서 가로막혔다.
‘반쪽’ 경방의 한계가 우려된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할 경우 상반기 중 대선을 치르고 곧장 새 정부가 경방을 다시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경방의 유효기간이 6개월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 말 박근혜 정부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에서 발표한 ‘2017년 경방’은 불과 반년 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탄핵 정국부터 빨리 안정시키는 게 최선의 경제대책”이라며 “여·야·정 협의체에 경방부터 안건으로 올려 ‘6개월용’ 대책의 한계를 깨고 실행력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