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성공 방식으로는 안 된다.”
새해 첫 근무일인 2일 삼성전자 수장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2일 삼성전자 경영 투톱인 한종희 DX(모바일·가전) 부문장과 전영현 DS(반도체) 부문장은 공동 명의로 낸 신년사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새로운 제품과 사업, 혁신적 사업 모델을 조기에 발굴하고 미래 기술·인재에 과감한 투자를 추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삼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있다. 2일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각각 7만8000원과 7만7000원으로, 기존보다 7~8%씩 하향 조정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견조함에도 삼성의 HBM 양산 일정이 기대보다 지연”되고(대신증권), “AI와 HBM 중심의 업사이클에서 소외됐다”(한투증권)는 이유다.
‘과감한 혁신’ 외치지만 안정 지향
이를 위해선 2017년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이후 8년간 이어진 ‘안정 지향’ 문화와 당연하게 여겨온 ‘1등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지난달 사장단 인사에서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인 최윤호·박학규·김용관 사장들이 전진 배치됐는데, ‘어려울수록 구관이 명관’이라는 평가와 ‘과거 방식으로 혁신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엇갈린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엔비디아가 지난해 AI 스타트업에 10억 달러(약 1조4700억원) 이상 투자했고, 이는 지난 2022년의 10배 이상 규모”라고 보도했다. AI 투자에서 엔비디아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을 넘어섰는데, 호황에 취하지 않고 여전히 ‘씨 뿌리기’에 한창이라는 거다.
조급증과 순혈 넘어, 영입 인재 활용해야
그러나 반도체 업계와 학계에서는 “삼성이 어렵게 확보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한 사례가 거의 없다”라고 지적한다. HBM 등 AI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후공정인 패키징을 강화하기 위해 영입한 TSMC 출신 린준청 부사장도 지난 12월 31일 자로 계약 만료돼 2년 만에 삼성을 떠났다. 앞서 영입했던 AI 인재 승현준·이동렬 교수도 2023년 말 회사를 떠났다. 이들은 회사의 보수적인 투자 기조와 제한적인 권한에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거머쥔 구글 딥마인드는 4~5년 전만 해도 알파벳(모회사)의 골칫덩이였다. 2019년 딥마인드의 손실은 6억6000만 달러(약 9674억원)에 달했는데, 버는 돈은 거의 없고 AI 인프라·인재 확보를 위한 투자는 막대했다. 그러나 구글은 2023년 초 딥마인드와 자체 AI 연구 조직 구글 브레인을 합병하고 데미스 하사비스를 통합 조직 수장으로 앉혔다. 구글 브레인을 이끌던 ‘성골’ 제프 딘은 도리어 자리를 내줬다. 영입한 인재가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과감하게 권한을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