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추천 방식의 ‘2차 내란특검법’도 거야(巨野)의 단독처리와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라는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타협을 요구했지만, 여야는 서로 제 갈 길만 갔다. 조기 대선에서 각 당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데 몰입한 된 결과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최 대행은 13일 오전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를 차례로 만나 “체포영장과 관련해 어떤 일이 있어도 물리적 충돌로 인한 불상사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위헌적 요소가 없는 (내란특검법) 법안을 여야가 함께 마련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같은 요청에 양측의 반응은 180도 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 집행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걸 막는 게 권한대행이 하셔야 할 일”이라며 “범인이 저항한다고 잡지 말라고 얘기하신 것 같아 ‘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제출한 특검법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법안”이라며 대신 공석인 국방부·행정안전부 장관 임명을 요구했다.
동상이몽을 드러낸 여야는 최 대행이 국회를 떠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충돌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은 내란특검법을 일방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항의하며 퇴장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하루속히 사태가 종식되는 것이 국가 안보와 국정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을 들었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토론 종결 찬성에 거수하고 있다. 야당은 이날 회의에서 2차 내란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뉴스1
국민의힘이 반발하는 내용에 대한 수정은 없었다. ‘비상계엄에 관련하여’ 문구만 추가한 채 “해외분쟁지역 파병, 대북확성기 가동, 대북전단 살포 대폭 확대, 무인기 평양 침투, 북한의 오물풍선 원점 타격,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북한의 공격 유도 등”을 외환(外患) 혐의로 다뤄야 한다는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쟁을 유도하거나 국민 생명·안전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행위를 했으면 당연히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국민의힘 의원 2명만 더 찬성하면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외환죄로 논란을 자초했다”(민주당 관계자)는 지적이 나온다. NLL 공격 유도 등의 핵심 근거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은 경찰조차 증거 가치를 의심하고 있다. 대북 확성기 등에 대해선 “국군의 정상적인 활동까지 외환죄로 규정했다”(권영세 위원장)는 여당의 반발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내에선 국민의힘이 ‘독소 조항’으로 꼽는 내란 선전·선동 혐의의 수사 범위를 좁히는 등 타협 시도 없이 곧바로 ‘강행 처리’ 수순을 밟은 점도 논란거리다. 이에 대해 민주당 당직자는 “수정할 내용은 3차 특검법에 반영해도 된다. 결국 국민의힘은 ‘내란특검법조차 반대한 정당’ 이미지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법안의 통과보다는 대선 유불리 셈법이 앞섰다는 얘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반대로 국민의힘이 준비 중인 법안 역시 진실규명 범위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이날 오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주진우 당 법률자문위원장이 제시한 내란특검법 대안은 수사 범위를 비상계엄 선포에서 해제에 이르는 구체적 행위 5가지로 규정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대통령·국방부 장관 등 행정공무원·군인이 국회의사당을 장악하고 권능을 실질적으로 마비시키려고 한 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능을 실질적으로 마비시키려고 한 혐의 ▶계엄 과정에서 정치인·공무원·민간인을 체포·구금하려고 한 의혹 ▶이와 관련 실탄을 동원하거나 유형력을 행사해 인적·물적 피해를 야기한 혐의 ▶비상계엄 해제까지 내란참여·지휘·종사·부화수행·폭동관여·사전모의한 혐의 등이다. 국회의사당 권능 마비나 중앙선관위 기능 마비 등에는 ‘실질적으로’라는 말로 처벌범위를 한정했다.
이 대안에는 ▶언론 브리핑 금지 ▶특검 후보 추천 방식 변경 ▶수사 인원 155명→68명 감축 ▶수사 기간 150일→110일 단축 등 수사와 공표를 제한하는 내용도 대거 포함됐다.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도입 법률에는 ▶수사 인력 105명 ▶수사 기간 최장 120일 ▶제한 없는 ‘대국민보고’ 조항 등이 담겼었다. 민주당 법사위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을 없애자는 건 판을 깨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대안마저도 여당 의총에선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영남의 한 중진 의원은 “헌법 중에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할 수 있다는 내용 포함돼 있다. 절차적 과정이 잘못될 수는 있지만, 계엄선포 자체가 헌정질서 중단과 위법이 맞냐”고 말했다고 한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 민주당발 선전·선동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며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 특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승리할 수 없다고 (다른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대 축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힘자랑하면 할수록 우리 지지율만 오르는 상황”이라며 “특검법을 적당히 검토하는 듯하다가 안 하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서 자체 특검법안 제출 여부를 위임받은 지도부는 14일 오후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당내 특검 찬성파에 대한 당 주류의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이날 의총에서 김상욱 의원이 “지금이라도 자체 내란 특검법을 발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자,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이 “우리가 전두환 추종세력이냐. 우리가 히틀러, 김상욱은 유대인이냐”라며 “김 의원은 정치를 잘못 배웠다. 앞으로 나한테 ‘형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조기 대선을 치르려고 마음이 조급한 민주당과, 자기편을 결집해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사활을 건 국민의힘의 머릿속엔 이미 대선 셈법 뿐”이라고 말했다.
오현석·성지원·강보현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