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하루에 4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다 보니 월급도, 일상생활도 애매한 상황”이라면서도 “다른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이나 PC방 아르바이트는 주당 평일 2~3일이나 주말 이틀만 구하는 공고가 표준이 돼버린 탓에 어느 곳이나 사정은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면서다.
내수 부진 장기화에 고용의 질이 빠르게 저하되고 있는 가운데 초단시간 일자리가 아르바이트의 ‘뉴노멀’로 정착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 주당 15시간 미만 근무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해 174만2000명에 달했다. 2023년에 비해 14만2000명 늘어난 것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lee.yoonchae@joongang.co.kr](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502/08/855bd2ae-d0d5-48ba-bb76-fec9a9725e84.jpg)
그래픽=이윤채 기자 lee.yoonchae@joongang.co.kr
이에 대해 고용주들은 역대급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알바 쪼개기’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근무 시간을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줄이면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는 호소다. 서울 성동구에서 3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51)씨는 “편의점이나 카페 같은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무 시간을 쪼개는 데도 한계가 있어 근무자가 비는 시간은 직접 근무해야 하는 실정이다. 자영업자들도 벼랑 끝에 서 있긴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청년층 사이에선 “쪼개기 알바는 ‘무급 노동’과 다를 게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몇 시간을 일해도 출퇴근에 시간이 드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의 PC방과 노원구의 식당을 오가며 아르바이트 중인 취업준비생 장모(32)씨는 “아르바이트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것인데, 아르바이트를 옮겨 다니는 비용과 시간은 보상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주변 친구들도 이런 점 때문에 두 곳 이상을 오가는 아르바이트는 꺼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경기 부진과 취업 환경 악화 속에 장씨처럼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늘면서 청년층의 첫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취업 경험이 있는 20~34세 683만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졸업 후 첫 취업까지 평균 14개월이 걸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첫 직장도 주당 근무 시간이 36시간 미만인 시간제 일자리가 18.9%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직을 아예 단념하는 ‘쉬는 청년’(15~29세)도 지난해 12월 현재 41만1000명으로 1년 새 12.3%나 늘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자 특별한 이유 없이 일하지 않고 쉬는 청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악화된 취업 시장에서 이탈한 이 같은 청년의 빈자리를 고령층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층 취업자 수는 월평균 380만6000명으로 사상 처음 청년층 취업자 수(월평균 375만5000명)를 넘어섰다. 시간제 근로자 수도 60대는 전년 대비 19만7000명 증가하며 다른 연령대를 압도했다.
고령층과 중장년층의 단기 근로자 수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지난해 키워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중장년 가능’이나 ‘시니어’를 키워드로 한 검색량이 전년에 비해 각각 5736.1%, 48.1% 늘어나는 등 시니어 고령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의 주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족(프리+아르바이트 합성어)’ 또한 급속히 고령화하는 데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프리터족 같은 단시간 근로자는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단기 아르바이트 시장에 한 번 진입할 경우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를 겪은 일본의 대응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일본에서도 고용 시장 악화로 구직 활동을 쉬거나 취업을 포기한 채 단기 아르바이트만 하는 프리터족이 날로 늘면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아지고 소비가 위축되는 등 사회 전반이 침체된다는 게 일본 사회의 우려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고령층 프리터 통계를 따로 집계하고 이들을 위한 취업 지원에 적극 나서는 등 프리터족과 고령층 문제의 동시 해결을 모색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실물 경기가 회복돼야 질 좋은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며 “그때까지 고령층과 단기 아르바이트 종사자들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