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15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4차 예비회담에서 회담 참석 남북 대표단이 서로 악수하는 모습. 사진 통일부,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3/adb206d8-ee0a-49bb-9b79-708fdf37df2f.jpg)
1989년 11월 15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4차 예비회담에서 회담 참석 남북 대표단이 서로 악수하는 모습. 사진 통일부, 연합뉴스
13일 통일부가 공개한 1984년 9월부터 1990년 7월까지의 정치·경제·체육 분야 남북 회담 문서(2266쪽 분량)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 1월 31일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에서 돌연 '콘크리트 장벽'을 언급하면서 비난을 시작했다.
北, 콘크리트 장벽은 "민족 분열·대결의 상징"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6차 예비회담 개최 모습. 사진 통일부,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3/63ee30aa-cac8-461a-9221-801b085fe39d.jpg)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6차 예비회담 개최 모습. 사진 통일부, 연합뉴스
하지만 북측 대표로 나온 김영철 당시 인민무력부 부국장(노동당 10국 고문)은 "6·25가 무슨 북의 탱크의 기습남침이요"라며 "이 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며 회담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북측은 이를 빌미로 대화를 거부했고, 결국 회담은 북한이 콘크리트장벽 철거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을 주장함에 따라 성과 없이 끝났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이후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방벽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다양한 차원의 물리적 차단 조치를 벌이는 현재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한민족 개념 유지가 이득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 불과 몇십년 사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북한은 대전차 방어용 방벽을 영구분열을 위한 차단물로 왜곡하면서 대남비난에 활용했다"며 "이는 북한이 남북 도로 및 철도를 파괴하고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는 모습과 배치되는 행태"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북측 회담시설인 '통일각'의 모습. 사진 청와대공동취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3/cc36dc2b-2012-4d09-b207-42617b053a4b.jpg)
판문점 북측 회담시설인 '통일각'의 모습. 사진 청와대공동취재단
국호 표기 두고 신경전도
북측 단장인 백남순은 1989년 11월 15일 제4차 예비회담에서 "고위당국자회담 또는 총리회담이라는 귀측의 회담명칭에는 우리 인민의 통일 의지가 잘 반영되어 있지 못하며 나라와 나라사이의 회담에서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명칭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은 '경제회담의 진전여부는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는 제목의 1985년 11월 21일자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서도 국호 표기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북남경제회담에서 채택하는 합의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채택하는 합의서가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 경제협력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하는 합의 문건인 만큼 서명란에다 국호를 써넣을 필요는 없다"면서다.
![남북대화 사료집 12, 13권과 남북대화 사료집 회의록 제2권 표지. 통일부 제공.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3/dad38c9c-27a3-47e2-b5a1-cfef602a41b4.jpg)
남북대화 사료집 12, 13권과 남북대화 사료집 회의록 제2권 표지. 통일부 제공. 연합뉴스
北 '고난의 행군' 징후도
이후 남측 대표는 "우리는 요즘 전기가 상당히 풍부하다"면서 "그런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가 빨리 남북교류도 많이 확대해 가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에 북측 대표는 "오늘 어떻게 돼서 이렇게 (정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력은 우리가 옛날에도 남측에 보내주겠다고 그랬다"고 응수했다.
이번 문서 공개는 2022년 첫 공개 이후 여섯 번째다. 통일부가 이날 공개한 문서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개최된 남북경제회담(1984년 11월~1985년 11월)과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1985년 7~9월),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1989년 2월~1990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중재로 열린 로잔 남북체육회담(1985년 10월~1986년 6월) 등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