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것만 한 게 없다(不如學·불여학)’, ‘책을 펴면 이로움이 있다(開卷有益·개권유익)’,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手不釋卷·수불석권)’ 등 독서와 사색에 대한 명구들을 서예로 썼다. 전북대 교수 서예동호회 ‘시엽(柿葉)’ 회원 11명이 대형 병풍을 비롯한 29점을 선보였다. ‘시엽’은 “종이가 귀하던 시절, 감나무 잎에 글씨 연습을 한 옛 사람들처럼 여유와 낭만을 갖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전시회 형식이 독특하다. 장소를 빌려 작품을 거는 전시가 아니라 온라인 전시다. 원하는 이들이 e메일(shimseok@jbnu.ac.kr)로 요청하면 서예 작품과 글귀에 대한 해설이 수록된 도록 파일을 보내주는 방식이다.
김병기, ‘책은 많이 읽었으되 생각이 막혀 있으면 기름이 오히려 등불을 끄는 꼴이 되고 만다(書多以壅 膏乃滅燈)’. 사진 시엽
16년째 ‘시엽’을 이끄는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명예교수는 “구태의연한 서예전 방식을 벗어나 실용적으로 해보자는 데 회원들이 공감했다”며 “도록 파일을 대학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교수들이 가르치는 제자나 학과 학생들에게도 보내자. 보낸 100명 중 10명만 읽어도 보람 아니겠냐는 의견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서예를 망하게 한 것은 서예인들”이라며 “자기가 쓴 구절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가 뭘 썼는지 읽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채옥희, ‘냇가에서 고기를 욕심내고 서있는 것은 돌아가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臨河而羨魚 不如歸家織網)’. 사진 시엽
전시작 중 그가 추천하는 구절은 이것. ‘책은 많이 읽었으되 생각이 막혀 있으면 기름이 오히려 등불을 끄는 꼴이 되고 만다(書多以壅 膏乃滅燈·서다이옹 고내멸등)’. 청나라 시인 원매의 이 글에 대해 그는 “검색보다는 사색할 일, 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보다 한 권의 책이라도 성실하게 독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