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찾은 독감환자에…에이즈·매독 등 59개 검사한 병원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공단 영등포북부지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공단 영등포북부지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올해는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재정 투입으로 적자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은 저평가된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보상은 인상하되, 불필요한 급여·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는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약속했던 필수의료에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는 것 중에서 2조원이 올해 투입된다”며 “사실 적자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필수의료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10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공단은 지난해 1조7244억원의 당기 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2021년부터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면서 역대 최초로 건강보험료율을 2년 연속 동결했다. 하지만 올해는 적자를 피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단은 그에 맞춰 재정 운용 계획을 맞춰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 이사장은 의료공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들어가는 지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큰 무리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공단은 중증·응급 등 비상진료에 약 1조4000억원 지원하고, 전공의 수련병원에 약 1조5000억원을 선지급했다. 정 이사장은 “작년 경험을 보면 (전공의가 빠져나간) 상급종합병원은 지출이 줄었지만, 나머지 종합병원들은 수익이 다 올랐다”며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급여 지출 부분은 괜찮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공단의 누적 적립금은 약 30조원에 이른다. 

독감 환자에 59가지 검사?…“관리 강화해야” 

20일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과잉진료 사례. 독감 환자(49)에게 에이즈·매독·류마티스·갑상선·간염 검사 등 59개 검사를 시행하고 진료비를 청구해 환자가 공단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다. 사진 건강보험공단

20일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과잉진료 사례. 독감 환자(49)에게 에이즈·매독·류마티스·갑상선·간염 검사 등 59개 검사를 시행하고 진료비를 청구해 환자가 공단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다. 사진 건강보험공단

 
정 이사장은 ‘안정적인 재정관리’를 최우선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 특히 이른바 ‘과잉진료’로 인한 재정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보험자의 급여관리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 이사장은 49세 독감 환자가 응급실을 찾았다가 에이즈·매독·류마티스 등 59가지 검사를 받고 건강보험 진료비만 48만원 가까이 나온 사례를 언급하며 관리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감 환자에게 20개 병이 의심된다며 검사를 한 것인데, 병명에 맞는 검사를 했기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문제없다며 급여를 삭감하지 않은 사례”라며 “이런 터무니없는 것들은 걸러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적정) 진료의 범위와 틀을 잡아주는 게 필요하다”며 “심평원과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해 활발하게 의논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법을 개정해 공단이 (과잉진료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 강화 의지도 강조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지만, 대부분 급여 진료와 함께 이뤄져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공단은 의료기관이 실시한 비급여 진료 항목과 단가 등을 2023년부터 보고받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비급여 정보 포털’을 연내 개통해 주요 비급여의 전국 평균 및 최고·최저 가격 등을 온라인에 공개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건강관리 등이 목적인 비급여 항목들이 적지 않다”며 “적어도 1000개 항목을 공단이 파악하고 있는데, 이를 표준화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조정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