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증에 멸공 써 인증해"…찬탄·반탄 홍역 대학가에 생긴 일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탄핵으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 만드실래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뉴스1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탄핵으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 만드실래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뉴스1

 

대립이 심각했던 서울대학교에선 여러 외부인과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이 상식을 벗어난 비판과 고성방가로 (탄핵 반대) 집회를 방해했다. 연세대에선 탄핵 찬성 측 아무도 학생증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부 세력이 연세대 이름으로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려대 재학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 19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규탄 선언문’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글의 일부다. 반탄·찬탄 집회에 ‘외부 세력’의 개입을 경계하고, 21일 오후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열리는 탄핵 반대 시국선언에 많이 참석해 달라는 취지다. 시국선언을 주최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고려대인들’은 동의 서명을 받으면서 재학·휴학·졸업 여부를 입증하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갈등이 연세대와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가에 확산하고 있다. 서울에서 서강대·한양대·한국외대와 이화여대 등이 반탄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선 경북대가 이미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했고,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 전남대·조선대에서도 반탄 시국선언이 예고됐다.

대학가 '탄핵 반대 시국선언' 포스터. 사진 각 대학 커뮤니티

대학가 '탄핵 반대 시국선언' 포스터. 사진 각 대학 커뮤니티

 
앞서 반탄 집회가 있었던 연세대(10일)와 서울대(15일·17일)에선 맞불 집회가 열렸다. 당초 탄핵 반대 측이 시국선언을 예고한 시간보다 1시간 앞서 찬탄 세력이 자리를 잡으면서 양측이 충돌한 것이다. 고려대에서도 ‘윤석열 퇴진 긴급 고려대 행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쿠데타 옹호 세력의 민주 광장 침탈에 맞불을 놓자”고 공지했다.

대학에서 반탄·찬탄 양측이 맞서다 보니 외부 세력의 개입 여부가 쟁점이 됐다. 서울대 집회에 대진연과 트루스포럼 등 단체와 유튜버 등이 모여들면서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졌던 여파다. 지난 17일 집회에는 총 300명가량(경찰 비공식 추산)이 결집했는데, 서로 멱살을 잡거나 침을 뱉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대 본부와 총학생회 측은 추가적인 충돌에 대비한 학생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측이 각각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측이 각각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사회에서 불신이 커지면서 “외부 세력과 연줄이 없느냐”, “학생증에 ‘멸공’ 등 두 글자 단어를 써서 인증하라”는 등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한 4학년 재학생은 “집회 때마다 확성기와 발전기를 동원한 외부인들이 학교로 들어오고 있다”며 “반탄이든 찬탄이든 극단적인 단체 한쪽을 지지하는 서울대생은 일부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파는 반탄·찬탄을 넘어선 갈등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출신 대학을 따지는 순혈주의와 혐중(嫌中) 등이 담긴 발언이 나오면서다.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학부 인증도 못 하는 것들(대학원으로 학벌을 세탁한다는 의미)이 멀쩡한 서울대생을 간첩으로 몰아간다”, “학부 인증을 못 하는 사람은 과연 서울대생일까? 한국인이긴 할까?” 식의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서울의 한 대학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오픈채팅방에 참여하기 전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인증은 관리자가 요구하는 특정 단어를 학생증이나 신분증에 적어 보이는 방식이다. 오픈채팅방 캡처

서울의 한 대학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오픈채팅방에 참여하기 전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인증은 관리자가 요구하는 특정 단어를 학생증이나 신분증에 적어 보이는 방식이다. 오픈채팅방 캡처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1980년대 대학은 공론장 역할이 컸기 때문에 대학생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지만, 요즘 대학생 당사자의 시각은 아닐 수 있다”면서 “대학 서열화와 혐오가 담긴 표현이 많아진다는 건 탄핵 정국이 한국 사회를 망가뜨린 한 측면”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석열과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진영화한 정치 구조에서, 이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탄핵 반대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튜버 등이 집회 현장을 ‘도장 깨기’ 하듯 다니면서 폭력적인 갈등을 조장하는 상황”이라며 “법률과 학칙의 범위에서 집회를 허용하는 견제와 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