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상호 무역과 관세’ 각서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대한(對韓) 수입 규제는 총 216건이다. 국가별로는 미국(53건)이 1위를 차지했고 인도(23건), 튀르키예(22건) 등 순이다. 특히 선진국(41.2%)보다 신흥국(58.8%)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하반기에 신규 조사를 개시해 실제 무역규제까지 이른 13건 중 10건이 브라질, 인도, 튀르키예 등 신흥국이었다.
특히 브라질은 화학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화학산업협회는 화학제품 수입이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의 강력한 수입규제를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을 언급한 국가도 있었다. 튀르키예 무역부는 2025년 수입규제 방향 밝히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증가가 자국 시장에 잠재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며 자국 산업 보호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정부는 18일 ‘비상수출대책’을 발표하며 글로벌 사우스(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등 대체시장 개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브라질·베트남 등 5곳에 수출지원기관 해외거점을 신설하고 이 지역 무역보험 규모를 55조원(지난해 48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기존 미국과 중국 시장으로 쏠린 수출 판로를 개선하고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19일 경기도 평택항 부근에 수출용 차들이 세워져 있다.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반도체와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서 관세가 최소 25%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각국이 ‘무역장벽’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 정부가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수출하는 부품이나 반도체 등 중간재는 수입국 기업이 고객인 경우가 많다"면서 "과세를 할 경우 결국 자국기업의 생산 단가가 오르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각국의 수입규제는 중국발 저가품목의 공급과잉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방어하려는 이유가 크다”며 “한국 기업은 중국만큼 공격적으로 덤핑하지 않는데도 큰 영향을 받게 됐다”고 짚었다. 한 수석연구원은 “특정 품목에 대해 반덤핑 조사가 이뤄질 경우 보통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타국 대비 덤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소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업이 잘 대비할 수 있도록 국가도 관련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각국의 보호무역 흐름에 대응하려면 국가별 무역 정책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관건인 셈이다. 미리 수입 규제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조사하고 해당 국가의 무역 정책을 파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고조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경제안보 공조. 일러스트 김지윤
각 교역국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필수재’와 ‘대체재’가 무엇인지를 정부가 파악해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컨대 자동차는 대체할 수 있지만, 철강은 무조건 한국 품목을 수입해야 하는 국가가 있을 것”이라며 “대체재가 있는 품목과 필수재를 묶는 ‘번들링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먼저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기업과 정부가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