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해 이동석 사장(앞줄 오른쪽)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철강 관세를 앞두고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략산업생산촉진세제’ 도입 논의가 커지고 있다. 자국 이익을 위해 무역장벽을 친 미국처럼 한국도 산업 보호를 위해 국내 생산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논의의 불을 지핀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지난 20일 충남 아산 소재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열린 경영진과의 간담회에서 “전략산업 분야에 대해선 국내 생산·고용을 늘리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내 생산 촉진을 지원하는 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등 국내 경제에 파급효과가 큰 전략산업에서 기업이 국내 생산량·고용을 늘리면 그에 비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전기차 공습, 트럼프 관세 등이 국내 자동차·철강·반도체 산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타개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현재 민주당은 해당 법안 발의를 위해 조문을 성안 중인데 전기차가 전략산업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부른 관세장벽…“가만히 있으면 다 뺏긴다”
이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관세 관련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과 관계가 깊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자동차 관세 부과시점을 4월 2일이라고 밝혔다가, 닷새 후인 지난 19일에는 “한 달 안에 발표할 것”이라며 시기를 앞당겼다. 관세율도 예상치 10~20%를 뛰어넘는 25%를 예고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매기면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18.59% 감소한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이에 국내 완성차 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준공되는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을 연산 30만대에서 50만대로 조기에 늘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70만대 수준인 미국 현지 생산을 120만대까지 늘릴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국내 생산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10만대만 줄어도 공장 1개 라인을 1년 동안 가동 중단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3000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항구 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우리만 손 놓고 있다가는 일자리를 다 뺏길 수 있다보니, 전략산업생산촉진세제를 검토하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일도 전략산업세제지원…“한국판 IRA 만들라”
전략산업생산촉진세제는 미국·일본도 이미 운영 중이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겐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지원하고, 미국 현지에서 배터리를 제조·판매한 기업엔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 수순을 밟고 있지만, 시행 1년 만에 미국 내 1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등 효과가 컸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이 혜택과 미국 시장에서 기회를 보고 현지에 생산시설을 마련했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3월 『IRA 평가와 정책과제』보고서에서 “IRA는 친환경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외국인 직접투자를 촉진해 미국의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워싱턴 DC의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공화당 주지사 협회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도 지난해부터 ‘전략분야 국내생산촉진세제’를 시행하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한 철강(그린스틸), 폐기물로 제조한 화학제품(그린케미컬), 재생항공연료(SAF), 반도체 등 5개 분야가 대상이다. 최대 10년간 40%(반도체는 20%)의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전기차 생산 기업엔 1대당 40만엔(380만원)을 세액공제해준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미·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도 친환경 전기차 보급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지원책을 펴고 있다”며 “우리도 특정 산업을 지킬 한국판 IRA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 세계 각국의 부가가치세를 문제 삼으며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전략산업생산촉진세제를 트집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주요 수출국이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중국의 경우 2009~2022년 전기차 생산기업에 보조금을 직접 지급했는데, 유럽연합(EU)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율을 최고 45.3%로 높였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자칫 무역분쟁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친환경이나 지속가능경영 등 명분을 잘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