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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민당 대표가 23일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독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른 총선의 개표 결과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이 28.6%,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 20.8%, 사민당 16.4%, 환경 정당인 녹색당(Grüne) 11.6%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선거 열기가 고조되면서 최종 투표율은 82.5%로, 1987년 총선(84.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기민‧기사 연합은 2021년 총선에서 내준 정권을 3년여 만에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중앙 무대에서 배척 받던 독일대안당 역시 지난 총선의 두 배에 달하는 표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 실정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사민당은 “역사적인 참패”(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란 성적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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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더 이상의 좌파 정치는 없다”, “제 정신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보수의 귀환을 강조했다. 그는 또 “총리 취임 첫날 국경을 폐쇄하고 난민 신청자들을 거부하겠다”고도 했다. 사민당은 메르츠를 “미니 트럼프”라 공격하고, 보수 정당들을 비난하는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친이민 정책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질려버린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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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참패한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 신화통신=연합뉴스
메르츠는 이런 분위기를 경계하고 나섰다. 그는 총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강한 유럽을 만들어 차근차근 미국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독자 노선 입장을 밝혔다. 또 트럼프를 겨냥해 “미국인, 적어도 미국인 일부는 유럽의 운명에 무관심하다는 게 분명하다”, “워싱턴은 모스크바만큼이나 과격하고 터무니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관건은 연정 구성이다. 메르츠가 극우와 연정을 하지 않는다는 독일 정치의 ‘방화벽’ 전통을 지키겠다고 거듭 말하는 만큼 일단 사민당과 연정을 맺는 방법이 거론된다.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도 연정이 구성된다면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두 정당의 정책 지향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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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약진한 독일대안당의 알리스 바이델 대표. EPA=연합뉴스
그만큼 메르츠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트럼프와 미국은 유럽의 안전에 더 이상 관심이 없고, 국내 정책에선 사민당에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기다 독일대안당은 메르츠가 실패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