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수퍼스타 쿼터백 머리 "내 뿌리는 한국, 자랑스럽다"

생애 처음으로 '할머니의 고향' 한국을 방문한 NFL 스타 쿼터백 카일러 머리. 연합뉴스

생애 처음으로 '할머니의 고향' 한국을 방문한 NFL 스타 쿼터백 카일러 머리. 연합뉴스

"서울은 내가 좋아하는 뉴욕과 풍경이 닮았어요. 오리지널 한식 맛도 끝내주고요. 소속팀 복귀도 포기하고 이대로 한국에 눌러앉을까 고민 중입니다. 하하." 

 한국계 미국인인 미국프로풋볼(NFL) 수퍼스타 쿼터백 카일러 머리(27·애리조나 카디널스)는 MZ세대다운 솔직한 화법으로 생애 첫 한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머리는 외할머니가 한국인이다.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의 전략담당 부사장을 지낸 그의 어머니 미시(51)는 결혼 전까지 한국 이름(미선)을 썼다. 머리의 아버지 케빈 역시 야구와 풋볼 선수 출신이다. 지난 10일 입국한 머리는 "한국은 나의 '뿌리'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마침 어머니 제안으로 함께 여행 왔다"며 "인천공항에 수백 명의 팬이 나왔는데, 그렇게 크게 환대받을 줄 몰랐다. 열흘 정도 머물며 '할머니의 나라'를 직접 경험할 생각에 설렌다"며 웃었다.

12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만난 카일러 머리. 한국 팬들에게 자필 인사 메시지를 적었다. 사진 카일러 머리

12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만난 카일러 머리. 한국 팬들에게 자필 인사 메시지를 적었다. 사진 카일러 머리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머리는 고교 시절부터 야구와 풋볼 선수를 겸업했다. 한 종목만 하기엔 양쪽 재능이 아까웠다. 키 1m78㎝, 체중 94㎏의 머리는 거구가 득실대는 풋볼과 야구 쪽 모두에서 체구가 작은 편이다. 폭발적 스피드와 지능적 플레이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했다. 그 결과 머리는 2018년 6월 미국프로야구(MLB)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9순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뽑혔다. 

그런데 그해 가을, 대학풋볼 최고 선수에게 주는 하이즈먼 트로피를 받고는 풋볼로 진로를 틀었다. 2019년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지명됐다. 미국 스포츠 최초의 MLB와 NFL에서 모두 1라운드에 뽑힌 선수다. 이어 2019시즌 NFL 신인상까지 받았다. 입단 당시 4년 총액 4516만 달러(약 506억원)에 계약했던 그는 2022시즌 직전 애리조나와 2024년부터 발동하는 5년 최대 2억3050만 달러(3320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역대 처음으로 MLB와 NFL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 받은 카일러 머리. 풋볼을 택했다. AP=연합뉴스

역대 처음으로 MLB와 NFL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 받은 카일러 머리. 풋볼을 택했다. AP=연합뉴스

 머리는 NFL에서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유명하다. 애리조나 입단 첫 시즌 기자회견에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때는 88서울올림픽 티셔츠 차림으로 훈련한다. 2023년 발생한 텍사스주 앨런의 쇼핑몰 총격 사건으로 재미교포 일가족이 사망했는데, 머리는 유일한 생존자인 장남에게 1만5000달러(약 2200만원)를 기부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Green Light'와 함께 한글로 '초록불'이라고 적혀있다. 


머리는 "목표인 수퍼보울 우승과 최우수선수(MVP) 수상을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초록불은) 꿈을 이룬 뒤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겠단 의미"라고 설명했다. 헬멧에 태극기를 붙이고 뛰는 머리는 "내 뿌리가 한국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어머니와 나의 문화적 유산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한국 문화를 즐긴다"며 "미국에서도 큰 화제인 가수 로제의 'APT(아파트)'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나도 즐긴다. 특히 '오징어 게임' 3편 미국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참석을 위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카일러 머리. 사진 카일러 머리 SNS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카일러 머리. 사진 카일러 머리 SNS

 머리는 한국에서도 NFL 인기를 높아지길 바랐다. 그는 "도전 정신은 내가 체격 열세를 딛고 최고 무대에서 뛰는 이유"라며 "한국 축구와 야구에는 세계 정상에서 뛰는 선수가 많다. 이번 방한 기간 NFL을 최대한 알리겠다. 언젠가 NFL에 직행하는 한국 선수도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구를 했어도 최고가 됐을지' 묻자 그는 "물론"이라며 "스피드와 힘이 좋아 공격수를 했을 거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의 리오넬 메시는 없었을 것"이라며 농담 섞인 답을 내놨다. 미식축구를 변형한 플래그 풋볼이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 대표로 출전할 생각이 있나' 묻자 그는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하다"고 답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