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업 판 벌린 삼성, 감원 예고 인텔…반도체 사즉생 전쟁

‘독한 삼성’과 ‘편집광(狂) 인텔’에 누가 먼저 도달하는가. 양대 반도체 공룡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나란히 위기 선언과 대응에 착수하면서, 누가 더 빠르고 과감하게 ‘사즉생(死卽生)’ 하느냐의 싸움이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컨퍼런스(GTC)에 ‘메모리 판’을 벌리며 영업 총력전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편집광 인텔’ 위해, 대량 감원 예고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립부 탄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회사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중간 관리자 대량 감원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인텔 이사를 맡아 회사를 진단한 뒤 “‘편집광’ 정신이 사라졌다”라고 평했다. 이는 인텔의 전설 앤디 그로브 전 CEO(1987~1998)가 강조한, 현재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깨어 있는 정신이다. 인텔의 비대한 인력과 느린 의사결정을 손봐야 한다는 탄 이사의 건의는 당시 거절됐으나, 벼랑 끝에 몰린 인텔 이사회가 7개월 만에 그를 CEO로 모시면서 인텔은 수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독한 삼성’, GTC서 메모리 판 벌린다

삼성전자는 17~21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기술컨퍼런스(GTC)에서 그래픽 더블데이터레이트 7세대(GDDR7) 세션을 연다. 첨단 메모리인 GDDR7은 소비자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사용되는데, 엔비디아가 지난 1월 발표한 신제품 RTX50의 GDDR7 주 공급사가 삼성전자다. 이번 GTC에서 젠슨 황 CEO가 ‘프로슈머(소비자+전문가)’ 급으로 성능을 높인 RTX 신제품을 공개할 전망으로, 이미 업계에는 GDDR7을 탑재한 제품 사양에 대한 소문이 돈다.

삼성전자 12나노급 그래픽용 D램인 24기가비트(Gb) GDDR7.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12나노급 그래픽용 D램인 24기가비트(Gb) GDDR7. 사진 삼성전자

 
이에 삼성전자는 김인동 메모리사업부 D램 담당 상무가 GTC 기간 동안 고객사 경영진 대상 GDDR7 맞춤 세션을 연다. ‘엔비디아의 GDDR7 파트너’인 삼성 메모리를 부각하는 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GTC에도 세션을 열었으나 엔비디아 기술을 삼성 반도체 공정에 적용한 ‘고객사’로서였다. 이번에는 공급사 입장으로 완전히 영업 판을 벌이는 셈이다. 


정성태 삼성전자 팰로우는 이번 GTC에서 삼성의 광학근접보정(OPC) 기술을 발표한다. OPC는 반도체 패턴의 정밀도를 보정하는 공정으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함께 사용되며, 첨단 파운드리·메모리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 삼성은 인텔 포토 공정 최고 전문가였던 정성태 박사를 지난 2023년 조용히 영입했다.

최근 삼성전자 임원들에게는 세미나를 통해 “사즉생의 각오로 행동해야 한다”는 이재용 회장 메시지와 ‘독한 삼성인’ 크리스탈 패가 전달됐다. 이 회장은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고 진단하며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모셔오라”고 주문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월 CES 2025에서 자사 소비자용 GPU인 RTX50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월 CES 2025에서 자사 소비자용 GPU인 RTX50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삼성과 인텔, 굴욕 누가 먼저 벗나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인 삼성과 인텔은, 대만 TSMC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반도체 분업화 흐름 속에 기술 주도권을 잃었다. 삼성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의 두뇌인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인텔은 루나레이크 등 인공지능(AI) PC용 최신 칩을, TSMC 파운드리에서 제조하는 굴욕을 맛보고 있다. 

IDM의 시너지를 내려면 설계-파운드리-기기 등 사업부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데, 이는 개별 사업부 권한을 넘어선다. 인텔이 ‘반도체 거물’로 CEO를 교체한 상황에서, 삼성의 ‘콘트롤 타워 재건’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 GTC 참석

이번 GTC에서 젠슨 황 CEO는 신형 AI 가속기 블랙웰울트라(B300)을 발표하며, 자사 시스템이 AI 추론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강조할 전망이다. 지난 1월 중국 딥시크가 고효율 추론용 AI 모델을 발표한 후 ‘앞으로 GPU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엔비디아 주가는 약세다. 그러나 젠슨 황 CEO는 그전부터 ‘AI는 추론 시장이 더 크다’고 강조해 왔다.  

SK하이닉스는 곽노정 대표가 직접 GTC에 참석해 엔비디아와 끈끈한 협력을 과시하며, 개발 중인 HBM4 12단 모형을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