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서 주민이 집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불을 가리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영희(65)씨는 집 뒷산에서 지금도 일렁이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여기서 4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이렇게 지독한 산불은 처음”이라며 “산불진화대원들이 불을 꺼도 꺼도 계속 되살아난다”고 했다.
이씨는 전날 오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에도 집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산에서 시뻘건 불이 능선을 타고 내려오고 있는데 집을 버리고 대피했다가 모두 다 타버리면 누가 책임져 주나”라며 “농기계와 각종 자재는 멀리 옮겨두고 집 주변에 계속해서 물을 뿌리면서 집을 지켰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산불 넘어올 줄 몰랐다”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서 주민이 집 뒷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불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산림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번지고 있다. 산불피해영향구역은 1만2565㏊로 추정되며 총 화선은 214.5㎞로 늘어났다. 이 중 118.2㎞를 진화해 잔여 화선은 96.3㎞로 파악됐다. 진화율은 전날 약 70%까지 올랐다가 이날 오전 5시 기준 55%로 내려앉았다.
이번 의성 산불의 피해 규모는 국내 산불 중에서 역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서 2000년 4월 발생한 강원 강릉·동해·삼척·고성 산불(2만3913㏊), 2022년 3월 경북 울진·강원 강릉·동해·삼척 산불(2만523㏊)에 이어 큰 규모다.
산림당국은 25일 일출과 동시에 진화헬기 62대를 투입하고 진화인력 2673명, 진화차량 453대 등을 동원해 진화 작업에 총력을 쏟고 있다.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 길안면으로 번져 25일 이틀째 확산하는 가운데 진화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전 현재 산불 현장 인근의 바람은 평균 초속 1m 안팎의 잠잠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이 때문에 산불이 뿜어내는 연기도 흩어지지 않아 헬기가 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후에 또 강풍…산불 확산 우려
오후부터는 다시 강하게 바람이 불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부터 경북권 전역에 순간풍속이 초속 15m 이상, 산지의 경우 초속 20m 이상으로 강하게 불겠다고 예고했다. 산불이 났을 때 강풍이 불면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피해 구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안계리에서 발생한 산불의 불씨가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20여㎞ 이상 떨어진 안동시 길안면까지 덮쳤다. 연합뉴스
산불 진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대피한 주민 수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안동과 의성 주민 2816명(의성 1552명·안동 1264명)이 실내체육관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주택 23곳과 공장 1곳, 창고 30곳 등 모두 92곳의 시설물에 산불 피해가 났다. 아직 산불 진화가 끝나지 않아 축사나 과수 피해는 집계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야간동안 지상 진화인력을 배치해 민가로 향하는 산불을 최대한 저지한 데 이어 일출과 동시에 진화헬기를 순차적으로 투입하고 있다”며 “진화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진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