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사망 8명중 6명 바닷가 주민…"대피문자 20분만 빨랐어도"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 연합뉴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 연합뉴스

“대피문자를 25일 오후 9시에 받고 집 대문을 여니 불이 마당 앞까지 치고 들어왔어요. 몸에 물 뿌리고 불길 속을 지나서 집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1분만 늦었어도 연기와 화염에 죽었을 겁니다.”

지난 26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강구면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심모(69)씨의 말이다. 영덕읍 매정3리에 살고 있는 그는 “너무 급해서 옷은커녕 양말도 못 신고 나왔다”며 “25일 밤새 차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다 26일 아침에서야 대피소로 왔다”고 말했다.  

영덕 사망자 8명 중 6명 동쪽 끝 바닷가 마을서 발생

27일 기준 영덕군 산불 사망자는 8명이다. 이 가운데 심씨가 사는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 영덕읍 석리에서 100세 여성이 매몰돼 숨졌다. 매정리와 섭리는 영덕군 동쪽 끝 바닷가 마을이다. 이 외 영덕군 축산면에서 80대 여성과 80대 남성이 각각 불에 타고, 매몰돼 숨졌다.   

매정1리에 살던 80대 부부는 자다가 불길이 집 안까지 들어오자 대피하지 못하고 소사했다. 매정1리에서 주유소를 운영 중인 박모(57)씨는 “대피문자를 받고 밖으로 뛰쳐나와 산 밑을 내려다보니 불길이 마을을 지나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80대 부부의 아들이 영덕읍에 사는데 대피문자를 받고 부모님이 사는 매정1리로 이동했지만 길이 막혀서 구출을 못 했다고 하더라”며 “아들이 ‘대피문자가 20분만 빨리 왔어도….’라며 탄식했다”고 말했다.  

매정2리에 위치한 A요양원 입소자 3명은 26일 오후 9시 대피하던 중 차량 폭발로 사망했다. 사망자는 정모(80)씨, 임모(86)씨, 김모(84)씨로 모두 80대 고령자다. A요양원 관계자는 “영덕군의 대피지시를 25일 오후 8시 20분 받고 죽기 살기로 입소자를 휠체어에 태워 차량으로 옮겼다”며 “조금만 더 대피명령을 빨리해줬더라면 사망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1리 마을 대부분 주택이 산불에 불타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뉴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1리 마을 대부분 주택이 산불에 불타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6시 청송서 영덕으로 산불 확산…강풍에 삽시간 번져 

경북 청송면과 경계 지점이자 영덕군 초입 지점인 지품면 황장리에 산불이 유입된 시각은 25일 오후 6시쯤. 이때 순간 초속 25m 이상 강풍이 불었고, 3시간 만에 영덕읍 매정리까지 퍼졌다. 황장리와 매정리까지 거리는 30㎞다.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 주민은 대피문자를 25일 오후 6시 받았다. 매정리보다 3시간가량 빨랐다. 황장리 주민 대부분은 무사히 영덕군 국민체육센터로 대피해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황장리에 사는 정모(68)씨 “청송군 산불이 지품면 황장리로 넘어올 때 사람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며 “차 타고 대피하는데 불티가 차 속도만큼 빠르게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지품면 오천리에 사는 심씨(67)는 “잔잔한 바람이었으면 영덕 초입에서 바닷가 마을까지 산불이 번지는데 5~6시간은 족히 걸렸을 텐데 이번 산불은 삽시간에 번졌다”고 말했다.  

영덕군은 현재까지 군 전체 면적의 27%인 약 2만㏊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주택 924채와 버스 1대, 승용차 2대, 어선 7척이 탔고 양식장 피해가 이어졌다. 군민 1277명은 14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영덕 산불로 집이 전소된 영덕군 주민들이 26일 오후 영덕군 국민체육센터에 대피해 있다. 이은지 기자

영덕 산불로 집이 전소된 영덕군 주민들이 26일 오후 영덕군 국민체육센터에 대피해 있다.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