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그날밤…"서울청 간부들 '의원 출입 막는 건 문제' 우려 있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국회 주변에 경찰 경비인력을 보낸 지휘라인의 경찰 간부들이 31일 법정에 나와 “서울청장의 지시를 받고 한 것은 맞지만, 국회를 완전히 다 막을 수 있는 인력이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 심리로 이날 오전부터 열린 조지호 경찰청장 및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주진우 서울청 경비부장, 오부명 경북경찰청장(전 서울청 공공안전차장), 임정주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 주변 경찰을 배치하고, 국회 통제를 했다 풀었다 반복했던 상황을 각자 복기했다. 투병 중인 조 청장은 오전 재판만 출석한 뒤 건강상의 이유로 오후 재판은 재판장의 양해를 받고 출석하지 않았다.

당시 국회는 오후 10시 47분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가(1차 통제), 11시 7분 국회의원‧보좌관‧기자‧직원 등의 출입이 잠시 허용됐고 이후 ‘포고령 1호’가 발포된 것에 근거해 오후 11시 37분 다시 국회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2차 통제). 김봉식 서울청장은 10시 47분, 11시 21분, 11시 54분 각각 직접 무전을 잡고 이 지시를 전파했다.  

“김봉식 ‘본청장님 지시…포고령에 따라 차단' 무전”

첫 증인으로 나온 주진우 서울청 경비부장은 “김봉식 서울청장이 ‘광화문 타격대를 조용히 준비시켜두라’고 지시했고, 최창복 경비안전계장을 통해 이동시켰다”며 “1차 봉쇄 이후 서울청 간부(오부명 공안차장, 주진우 경비부장, 임경우 수사부장)들이 헌법 77조 등 조문을 확인한 뒤 ‘의원은 막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건의해 김 청장이 봉쇄를 해제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오후 11시를 기해 포고령이 발포된 뒤, ‘포고령은 명령일 뿐인데 그보다 헌법, 법률이 상위법 아니냐’며 그대로 따라도 되는지 간부들 사이에서 의문이 일었는데 이때 사법고시 출신인 최현석 생안차장이 ‘이런 상황에선 포고령이 준법률적 효력이 있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포고령 내용이 생경한데 의원들은 들어가게 두는 게 좋지 않냐’는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김봉식 청장이 “본청장님 지시다, 그만해”라며 무전기를 잡고 포고령에 따라 차단한다는 무전을 내렸다고 진술했다.

오부명 당시 서울청 공공안전차장은 “포고령 1호가 나온 뒤 본청 임정주 경비국장에게서 전화로 ‘조지호 청장님 지시’라며 국회 봉쇄 지시를 받고 김봉식 청장님에게 전달했다”며 “2차 봉쇄 지시가 나간 뒤 본청에 전화해 ‘의원들을 막는 건 재고해달라’고 건의해봤으나 안 된단 회신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오 청장은 “김봉식 전 청장이 최창복 안전계장에게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면 신분 확인 후 진입을 허용하라’고 지시하는 걸 목격했다”고도 진술했다.


이어 증인으로 나선 임정주 국장도 “조지호 청장님이 사무실에서 포고령을 든 채 ‘포고령 효력이 있으니 서울청에 전화해서 (국회를) 통제하라’고 하신 것을 오 차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국회 다 막으려면 전국 기동대 다 써도 자신 없다”

다만 이들은 경찰 경비인력을 국회 인근에 배치한 것이 국회를 불법적으로 통제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 부장은 “2차 통제 전 잠시 출입이 허용됐을 때에도 일부 의원들이 못 들어가거나, 기동대에 포위된 것은 현장 경찰과 서울청 지시 사이 시차가 있어서 생긴 불상사”이고, “비상계엄 해제결의안 통과 이후 즉시 통제를 풀지 않은 것은 국회 내부에 있는 군인과 국회 밖 시민들 충돌 우려 때문”이라며 국회를 불법적으로 봉쇄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국회를 완전히 봉쇄하려면 당시 동원됐던 6개 기동대만으론 턱없이 부족하고, 서울은 물론 지방 기동대 137개를 다 동원해도 완벽하게 통제하기엔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이 ‘당시 국회 10개 문 중 3개만 열려 있었으니 3개를 막는 데에는 당시 동원된 6개 기동대면 충분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열린 문에 1개 기동대를 놓고 나머지 닫힌 문은 어차피 닫혔으니 요령껏 담을 둘러 인원을 깔라고 지시했다”고 답했다. 주 부장은 또 “저에게 책임지고 막으라고 했다면 6개 기동대만 대기시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