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이 중국 광둥성 선전의 옌톈 항으로 접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의 해양, 물류 및 조선 부문 지배력 강화에 대한 USTR 301조 조치’를 발표했다. 대상 및 적용 시기별로 1단계와 2단계로 나눠 시행된다.
우선 1단계로, 미국은 발표후 180일이 지난 10월 14일부터 중국 해운사가 운영하는 배에 순톤수(실제 운송할수 있는 화물의 용적)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매긴다. 2028년에는 순톤당 140달러로 늘어난다. 또 다른 나라 기업이라도 중국산 선박을 이용하면 입항 수수료를 내야한다. 순톤당 또는 컨테이너당 산정법 중 더 높은 금액을 내는 방식인데, 순톤당 18달러로 시작해 2028년 33달러까지 매년 5달러씩 더 부과된다. 컨테이너당 수수료는 120달러에서 시작해 2028년 250달러로 늘어난다. 또 미국 밖에서 건조된 자동차운반선에도 수수료가 부과된다.
USTR은 조치 배경으로 ‘중국산 상선의 시장 점유율 급증’을 꼽았다. USTR에 따르면 1999년 전 세계 선박 건조량 중 5% 미만이었던 중국의 점유율은 2023년 50%를 초과했다. 지난해 1월 기준 중국은 전 세계 상선의 19%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사진 HD현대
글로벌 해운업계는 이미 중국 조선소 대체제를 찾는 등 미국의 조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 엑손모빌은 중국 조선소에서 만들 예정이던 액화천연가스벙커린선(LNGBV) 주문 계약을 미뤘다. 중국 조선사와 거래하던 그리스 선주의 해운사 캐피탈 마리타임은 HD현대와 20척 규모 수주를 논의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주도 리스크를 지기 싫으니 한국 조선소를 찾을 유인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번 조치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해운업계 “수수료로 운임 오르면 시장 위축”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이 운항하는'HMM 함부르크호'의 모습. 연합뉴스
외국산 자동차운반선에는 1CEU(Car Equivalent Unit·선박의 차량 탑재 능력 단위)당 150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현대차·기아 수출 차를 미국으로 운송하는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자동차 운반선 중 미국산 배는 없다시피 해서, 미국 수출용 차량 운반선은 모두 수수료를 내야하는 상황”이라며 “화주와 상의해 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라 말했다.
USTR은 수수료 ‘유예 규정’을 두고 미국산 배 주문을 독려했다. 중국산 배 소유자가 해당 배와 동급 또는 더 큰 규모의 미국산 선박을 주문하고 인도 받으면 해당 중국산 선박에 대한 수수료는 최대 3년 유예하는 단서를 붙인 것이다. 자동차 운반선에도 같은 유예 조건을 붙였다. 주문과 동시에 수수료는 유예되고, 3년 내 인도받지 못하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3년 뒤 시행하는 2단계 조치에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이용하도록 의무화한 게 핵심이다. 2028년 4월 17일부터 전체 LNG수출량 중 1%를 미국산 LNG선으로 운송해야 한다. 2047년까지 이 비중은 15%로 늘린다. 지난해 LNG운반선 수주 점유율을 38%까지 확대한 중국을 견제하면서,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운반선을 미국 조선소에서 생산하도록 장려하겠다는 목적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Philly) 조선소 지분(100%)을 인수했다. 사진 한화오션
”미국서 LNG선 건조? 가능할지…”
하지만 미국이 ‘현지 건조’ 기조를 강화한 데 대해 국내 조선사의 우려가 적잖다. 국내 수주량이 장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고, 현지 건조에 나선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는 LNG운반에 쓰이는 17만4000~18만㎥급 LNG 운반선을 건조하기에는 규모가 작아 대규모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 HD현대중공업은 아직 미국 내 조선소가 없어 신규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새로 지어야 할 수도 있다. 모두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들지만, 투자 대비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익명을 원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LNG운반선은 화물창 건조를 위한 특수한 자재가 필요한데, 미국에선 공급업체가 없어 난감하다”며 “3만~4만㎥급 소형 LNG운반선을 중심으로 현지 생산을 시작해 미국의 규제를 맞춰나가는 방안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