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80인분 주문 후…"전투식량 960만원 사달라" 노쇼 사기 극성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공문.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공문.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군(軍) 간부와 병원 관계자 등을 사칭해 식당에 음식을 대량 주문한 뒤 잠적하는 이른바 ‘노쇼’(no show·예약 부도) 범행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8일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오모(48)씨는 지난 14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음식 주문 예약자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오씨는 경찰에서 “군 간부라고 소개한 A씨가 144만원어치인 삼계탕 80인분을 주문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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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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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장 등에 따르면 오씨는 토요일인 지난 12일 오후 7시쯤 A씨로부터 “다음 주 월요일(14일) 오후 4시쯤 삼계탕 80인분 포장해 가겠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오씨는 “계약금을 내야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A씨는 자신을 ‘OOO 대위’라고 소개하며 “법인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계약금을 먼저 보낼 수 없다. 음식을 받을 때 모두 결제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오씨는 예약 당일인 14일 오전 9시22분쯤 A씨로부터 ‘부대 물품 공급 결제 확약서’라는 공문과 함께 “부대에서 결제가 승인됐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아 A씨 주문 내용을 믿었다고 한다. 오씨는 같은 날 오후 1시50분쯤 A씨로부터 “음료수 80개도 추가하겠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관련 공문서를 또 전달받았다.


갑자기 전투식량 960만원 대납 요청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전투식량 납품업체 명함.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전투식량 납품업체 명함.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하지만 오씨는 “군 납품업체에서 전투식량 80개도 구매해야 한다. 납품대금을 대납해주면, 삼계탕을 가지러 갈 때 주문한 음식과 전투식량 대금을 한 번에 결제하겠다”라는 말에 수상함을 감지했다. A씨가 말한 납품업체로 전화를 해보니 전투식량 가격이 960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오씨는 A씨에게 “전투식량 대금을 대납할 수 없다”고 말했고, A씨와 연락이 두절됐다.

오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중에 생각해보니 A씨가 대량 주문 건을 빌미로 900만원이 넘는 전투식량 물품대금까지 편취하려 한 것 같다”며 “코로나19 펜데믹 때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보너스라도 챙겨주려 했는데, 헛수고만 시키게 돼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광주, 노쇼·대금 편취 사기 28건

광주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광주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군부대·병원 등 관계자로 사칭한 노쇼 피해 신고는 이달 13건을 비롯해 올해에만 14건(피해액 2000여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대금 편취 등 사기 피해까지 합치면 올해 광주에서만 28건의 사기·노쇼 범죄가 발생했다.

광주경찰은 피해자들이 받은 문자메시지와 공문서 등을 종합한 결과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수사에 나섰다. 노쇼 행위는 고의성이 입증되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경찰 등 “각별한 주의 당부”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공문.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군 간부를 사칭한 남성이 삼계탕집 업주 오모씨에게 보낸 공문. 사진 피해 업주 오모씨.

경찰과 군 관계자들은 노쇼와 사기 범죄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육군 제31보병사단 관계자는 “최근 군 간부를 사칭한 대량 주문 사기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군에서는 ‘물품 공급 확인서’ 등 공문서를 보내거나, 납품대금 대납 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경찰 관계자는 “경기 불황에 힘든 자영업자들을 노린 사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업주들은 대량 주문 연락이 오면 관련 기관 등에 재확인을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