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국무회의를 열고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경안을 발표한 것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새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추경을 편성한 이후 3년 만이다.
![최근 5년 간 추경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획재정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18/0e8244d9-935c-4d8c-80ae-b9f4f45baff8.jpg)
최근 5년 간 추경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획재정부]
추경 규모는 당초 10조원 수준에서 2조2000억원 늘었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산불 피해 복구 규모가 계속 증가했고 미 상호관세 발표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된 점 등을 고려했다"며 "또, 각계각층에서 규모 확대 필요성을 지속 제기해 관계부처협의 과정에서 효과성 높은 사업을 추가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신속한 산불 피해복구를 위해 재해대책비가 9000억원으로, 기존 약 5000억원에서 약 2배로 늘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재해∙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산림 헬기(6대), AI 감시카메라(30대), 드론(45대), 다목적 산불 진화차(48대) 등 첨단장비 도입에도 1조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통상 전쟁 대응도 강화한다. 관세 피해 기업 등에 정책자금 25조4000억원을 새로 공급하고, 수출 바우처 지원 규모를 2배로 늘린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프라 투자 방안도 담았다. 우선 AI 분야에만 1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을 확보한다.
민생 지원 부문에서는 소상공인이 공공 요금과 보험료 납부에 쓸 수 있게 연 50만원씩 크레딧을 지원한다. 중신용(옛 4~7등급)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6개월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1000만원 한도의 신용카드도 발급해 주기로 했다. 다양한 소비 촉진책도 마련됐다. 연매출 30억 이하 사업자에게 사용한 카드소비액 증가분의 20%에 대해서 30만원까지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 해준다. 공공 배달앱을 이용해 2만원 이상 3번 주문시 1만원 할인해주는 정책도 실시된다.
기재부는 이번 추경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1%포인트로 끌어올릴 것으로 추정했다. 기재부는 이번 추경이 '경기대응추경'이 아니라 재난 등 긴급한 사안에 대응한 '필수추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규모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분기가 지난 만큼 조기 추경도 아니고, 역성장이 예고된 만큼 0.1%포인트 올리는 12조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특히 GPU 구매 등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돈이 나가는 사업인 만큼 시기도, 내용도, 규모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공통적으로 전문가들은 민생 지원 부분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쓰면 환급해 준다'는 식의 정책이 많은데, 직관적이지도 않고 가라앉는 분위기를 반전하는 데도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증액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체 추경안 35조원을 내놨고, 마지노선을 15조원으로 정한 모습이다. 정부는 다음 주 초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김 차관은 "빠르고 시급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추경의 목적과 부합한다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다만, 정부가 더 큰 규모의 추경을 하지 못하는 데는 '재정 부담' 이유가 크다. 이번 추경 재원은 세계잉여금·기금여유재원 등을 활용해 4조1000억을 마련했다. 나머지 8조1000억원은 적자성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번 추경 편성으로 국가 총지출은 68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한다. 나라 살림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당초 GDP 대비 -2.8%에서 -3.2%로, 목표치(-3%)를 곧바로 넘게 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8.1%에서 48.4%로 오른다.
대선 이후 또다시 추경 요구가 불거질 것을 감안하면 당장은 시급한 사안 위주로만 추진하는 게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불 피해 지원이 시급하니 1차 추경을 빨리 하고, 부족한 부분은 대선 이후 2차 추경 때 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상반기 조기집행을 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경기 대응 여력이 더욱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준경 교수도 "당장 여야 협의가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했을 땐 최소로 이견 없는 추경을 한 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때 부족한 부분과 정책 방향에 맞게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1차 추경이 끝나기도 전에 2차 추경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추경'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이란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는 예산인 만큼 기본적으로는 본예산으로 해야 한다"며 "지금 한국 경제의 많은 부분이 정부가 돈을 급하게 넣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중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본예산을 짜야지 추경으로 밀어넣는 건 비효율적인 재정 집행"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