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파트 전유물 아니다…강북구의 '빌라 관리사무소' 실험

지난 17일 찾은 서울 강북구 번1동의 빌라관리사무소. 작은 동네 공원 옆에 설치됐다. 한은화 기자

지난 17일 찾은 서울 강북구 번1동의 빌라관리사무소. 작은 동네 공원 옆에 설치됐다. 한은화 기자

서울 강북구 번1동에는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빌라관리사무소가 있다. 강북구가 아파트에만 있던 관리사무소를 빌라만 있는 동네에도 만들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 중 아파트의 비율(2023년 기준)은 65%가 넘는다. 아파트 단지 안은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관리 체계가 잡혀 있지만, 단지 밖 동네는 관리 주체가 없어 상대적으로 거주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강북구는 특히 서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빌라가 많은 동네다. 연립 및 다세대 주택 등 소위 빌라라고 불리는 가구 비율이 40.9%에 달한다. 서울시의 평균치(30.5%)를 훌쩍 웃돈다. 이에 강북구는 2022년 12월 조례를 개정해 2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을 임의관리 공동주택으로 정의하고 예산 지원근거를 만들었다. 강북구 관계자는 18일 “주민들이 민원 신고를 하면 수동적으로 지원하던 것에서 벗어나 공공이 나서서 능동적으로 체계적으로 동네 관리를 하기 위해 빌라관리사무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강북구 번1동 주택가의 모습. 빌라관리사무소가 생긴 이후 골목길이 깨끗해졌다. 한은화 기자

강북구 번1동 주택가의 모습. 빌라관리사무소가 생긴 이후 골목길이 깨끗해졌다. 한은화 기자

 
2023년 3월 강북구 번1동 샛강어린이공원 옆에 처음 만들어진 빌라관리사무소에는 총 3명의 빌라관리 매니저가 교대로 근무한다. 평일에는 2명이 교대 근무로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 전담 매니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번1동 내에 있는 빌라 68동 694가구 중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49동 468가구가 관리 대상이다. 관리비는 무료다. 매니저가 주로 하는 일은 골목길 청소, 참여 빌라의 재활용 관리, 공용시설물 시설유지, 공중화장실 몰래카메라 탐지 등 다양하다. 

“서민을 위한 정책, 이어졌으면”

지난 17일 번1동 빌라관리사무소에서 사업 초기부터 근무한 심상수(65) 매니저를 만났다. 그가 설명하는 근무 일과는 이렇다.  

“아침 7시에 출근하자마자, 어린이 공원 모래사장에 있는 고양이 똥부터 치워요. 동네 아기들이 와서 놀아야 하니까 갈퀴를 가져와서 모래를 세세히 긁어가며 치워줘야 해요. 그러고 나서 빌라 관리용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 다니면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웁니다. 무단으로 버려진 대형 폐기물이 있으면 내가 치울 수 있는 건 치우고, 120에 신고도 합니다. 처음에는 막 버리는 쓰레기가 많아서 한 바퀴 돌면 봉투에 쓰레기가 꽉 찼는데 3개월쯤 지나니까 양이 팍 줄더라고요. 동네가 점점 깨끗해지니까 주민들도 여유가 생기고 환경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심상수 빌라관리 매니저가 전용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고 있다. 사진 강북구

심상수 빌라관리 매니저가 전용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고 있다. 사진 강북구

 
그는 사업 참여 빌라는 스스로 거주 환경에 더 신경 쓴다고도 했다.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빌라는 공용공간에 설치한 재활용 쓰레기도 가지런히 정리하고요. 비 오는 날에는 도로 배수구가 안 막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해요. 동네에 독거노인분들이 많은데 그분들 댁에 가서 전구도 갈아드리고, 제가 할 수 없는 건 동네 전파상을 연결해 드리기도 하죠. 빌라관리사무소에 공구가 비치되어 있어서 언제든 빌려드립니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며칠 동안 앓고 있던 독거노인분을 발견해서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모신 적도 있어요. 1인 가구가 워낙 많이 살고 서로 모르고 사는 게 워낙 익숙한 동네이지만, 그래도 90%는 마음을 열고 저를 대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동네를 돌며 청소하고 순찰하느라 3개월 사이에 살이 6㎏이 빠지기도 했는데 보람 있어요. 서민을 위해 만든 정책이니까, 사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빌라관리사무소는 조용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북구의 빌라관리사무소는 번1동을 시작으로 미아ㆍ송중동, 수유2동 등 현재 총 3곳에 설치됐다. 올해 총 7곳까지 늘릴 예정이다. 기간제 근로자인 빌라 매니저의 인건비 등을 포함한 총예산은 6억3000만원이다. 통상 구에서 하는 일회성 축제 예산으로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다. 강북구는 관내 총 13개 동 중에서 아파트가 많은 2개 동을 제외하고 11개 동에 빌라관리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목표다. 

구청의 지원으로 빌라에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 분류함. 빌라관리 매니저가 관리를 한다. 한은화 기자

구청의 지원으로 빌라에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 분류함. 빌라관리 매니저가 관리를 한다. 한은화 기자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빌라관리사무소는 관리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빌라 입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 구민 호응이 높은 사업”이라며 “더 많은 구민 여러분께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