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구조물 '해저 고정' 여부 확답 않는 中…'해양대화' 담판 관건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대형 철골 구조물과 관련해 해저에 고정됐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한국의 현지 실지 조사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조만간 개최될 국장급 한·중 해양대화에서 중국으로부터 구조물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물론 현지 조사 수락 등도 받아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대형 구조물 중 하나. 2022년 설치됐는데 중국은 이를 심해 양식 관리 보조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대형 구조물 중 하나. 2022년 설치됐는데 중국은 이를 심해 양식 관리 보조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시추선 개조 후 "관리 시설" 주장 

중국은 유사한 구조물을 12기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에 따라 2018년 선란 1호를 시작으로 2022년엔 관리 보조 시설 명목의 구조물을 설치했고, 지난해는 선란 2호까지 설치했다. 한·중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PMZ에선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어업 외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 근해의 심해 어업양식 시설"이라고 주장하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관리 보조 시설 명목의 구조물은 석유 시추 시설을 개조한 것이라는 지적이 설치 당시부터 제기됐다.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실이 최근 확보한 해당 구조물의 사진을 보면 옆면에 '애틀랜틱 암스테르담'(Atlantic Amsterdam)이라는 과거 영문명과 함께 ‘선위안하이(深遠海·심원해)1호’라는 현재 명칭이 선명하다. 정부가 이력을 확인한 결과 석유 시추선으로 활용되다 2016년에 폐기된 것으로 파악됐다. ‘선위안하이’는 산둥성 소유의 산둥해양그룹 홈페이지에 따르면 자본금 5억 위안(973억원)을 출자해 심해 녹색 양식 시범구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 명칭이다. 향후 시범구를 넘어 복수의 유사 시설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해당 시설이 실제 설치되기 전인 2021년 10월에는 칭다오에 도착한 애틀랜틱 암스테르담을 가리켜 "통합 관리 플랫폼"이라고 설명하며 "생활 지원, 물자 저장, 시스템 관리, 양식장 원격 제어, 정보 교환, 유지보수 등 역할을 한다"고 소개한 칭다오 어업 엑스포 관련 게시물도 발견됐다. 당시 게시물에서 중국 측은 "2025년까지 심해 장비 클러스터가 건설될 것"이라며 "양식 수역이 170만㎥에 달하고, 연간 생산량은 800만 마리, 생산 가치는 100억 위안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은 해당 구조물이 개조 후 더 이상 석유 시추 목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연어 양식을 관리하기 위해 다섯 명 정도가 상주할 수 있는 "어업을 위한 양식용 부대 시설"이라고 2022년 당시 한국에 설명했다고 한다. 구조물은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공간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대형 구조물 중 하나. 2022년 설치됐는데 중국은 이를 심해 양식 관리 보조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대형 구조물 중 하나. 2022년 설치됐는데 중국은 이를 심해 양식 관리 보조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고정 여부 확인 안 돼…조사도 거부 

그러나 해당 구조물이 보통의 석유 시추 시설처럼 해저에 고정된 형태인지 아닌지를 아직도 정보당국과 군을 비롯한 정부 차원에서는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위성 사진만으로는 정확한 식별이 어렵고, 적절한 장비를 동원한 해저 조사가 필요한데 중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지난 2월 한국이 해당 구조물을 점검하려는 해양 조사선을 보냈지만, 중국이 가로막으면서 양국 해경이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와 관련,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21일 브리핑에서 "석유 시추선 형태의 중국 측 해상 구조물을 2022년 3월 우리 어업지도선이 최초로 발견하고 외교당국에 전파했고 그래서 외교 채널에서 (중국에) 굉장히 큰 우려를 표명한 바가 있다"며 고정식 여부나 구체적인 제원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지난해 설치한 선란 2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지난해 설치한 선란 2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해당 구조물이 고정식인지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고정식일 경우 국제법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제83조는 EEZ 획정 분쟁과 관련해 "과도적인 기간 동안 최종합의에 이르는 것을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거 판례를 보면 ‘해양 환경에 영구적인 물리적 영향을 주는 행위’는 이 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철근 등을 사용해 구조물을 해저에 말뚝처럼 고정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장급 대화서 심층 논의

정부는 해당 구조물이 고정식 혹은 부유식 중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려운 이른바 '반(半)고정식' 형태일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중국이 어업용 양식장이라고 주장하는 선란 1호 역시 해저에 여러 개의 닻을 내릴 수 있는 구조인데, 관리 보조시설 또한 강한 바람이나 해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고정 조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2018년 설치한 선란 1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2018년 설치한 선란 1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정부는 조만간 열릴 한·중 해양대화에서 중국 측으로부터 구조물의 성격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설명은 물론 현지 조사 요청 수용까지 끌어내겠다는 목표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해당 구조물 관련 외교 경로를 통해 문제 제기를 했지만, 중국은 '어업용'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시정 없이 구조물을 확대했다. 이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재발 방지를 확약받는 것도 이번 해양대화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번 대화에는 한국에선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국장이, 중국에선 홍량(洪亮) 외교부 변계해양사 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다.

정부는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경우 이에 상응하는 비례 대응 조치도 검토해왔다. 강 장관은 이날 "비례 대응은 해양 영토를 지킨다는 관점에서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수부는 맞대응 차원에서 한국 측도 양식 시설 등 적절한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해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