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GDP 증가율(전 분기 대비)은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하면 -0.24%로, 한은의 지난 2월 공식 전망치(0.2%)보다 0.4%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4분기 연속 0.1% 이하 성장은 196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0.1% 성장했다. 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역성장한 것도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 말고는 없었다.
1분기 역성장 쇼크의 주된 요인은 최악의 내수 부진이다. 예상보다 더욱 길어진 정치불확실성, 미 관세정책 예고에 따른 소비ㆍ투자심리 위축, 3월 대형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미 관세정책 예고에 따른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확대도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을 지연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김영옥 기자
내수의 성장기여도를 보면 -0.6%포인트로 작년 4분기(-0.2%)보다 마이너스 기여도가 확대됐다. 그 결과 순수출(수출-수입, 0.3%포인트)이 겨우 끌어올린 성장률을 다 깎아 먹었다.
특히 내수 중에서도 건설투자가 전기 대비 3.2%나 줄면서 성장률을 0.4%포인트나 끌어내렸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연간으로도 성장률을 0.5%포인트 낮췄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건설투자의 경우 투자심리회복이 지연된 것뿐 아니라 그간 고금리 상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 등으로 착공이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주요 자잿값, 인건비까지 올라 건설업체 수익성이 악화했다”며 “지금으로썬 빠른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설비투자도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위주로 2.1% 축소되면서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내렸다. 이전까진 성장률을 뒷받침해왔지만 최근 미국발 통상정책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설비투자의 1분기 성장률은 2021년 3분기(-4.9%)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민간소비도 예전만큼 성장에 기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1분기 민간소비는 오락문화ㆍ의료 등 서비스 소비 부진으로 전 분기보다 0.1% 감소했다. 우선 고령화 속도, 가계부채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소비가 둔화하는 추세인 데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절 TV, 냉장고 등 내구재 소비가 크게 늘어난 이후 교체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료품ㆍ의류 등 비내구재는 코로나 이후 가격이 크게 오른 점이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다만 내수가 바닥을 찍은 만큼 2분기엔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이 국장은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한 효과도 나타나면서 소비심리가 1분기보다는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조기 대선에 따른 선거 예산 집행, 정부의 적극적 재정 지출 의지 등도 소비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한편 1분기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0.3%로 전 분기와 같았다. 수출이 화학제품ㆍ기계ㆍ장비 등을 중심으로 1.1% 줄었지만, 수입 감소 폭(2%)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엔비디아 인공지능(AI) 가속기 발열 이슈 등으로 고성능 반도체(HBM) 수요가 이연된 점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이 중 철강, 알루미늄 등의 수출이 부진한 배경과 관련해 이 국장은 “수출 통계를 보면 미국 상호관세의 영향이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1분기까지는) 글로벌 산업 경기 부진의 영향이 더 커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일(현지 시간) 미국이 한국에 적용하기로 한 상호관세율은 25%지만 이후 90일간 유예하면서 현재 일부 품목에 기본 관세 10%만 적용되고 있다. 게다가 철강의 경우 계약 후 수출까지 통상 2~3개월 정도 걸린다. 뒤집어 생각하면 3분기부터 상호관세가 발효될 경우 수출이 더 크게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성장률도 지난 2월 전망치인 1.5%에서 대폭 하향 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분기 성장률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계적으로 보더라도 1.5%보다 최소한 0.4%포인트 낮은 1% 초반에 그칠 수 있다. 일각에선 관세의 부정적 효과가 커지면서 1%에도 못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에서 1%로 크게 낮췄다. 라훌 아난드 IMF 한국 미션단장은 23일(현지시간) 한국 성장률 전망 수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관세 조치 영향뿐 아니라 지난해 말 이후 한국 정치 상황 변화도 함께 고려한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 효과에 더해, 소비 부진과 투자 위축 등 데이터로 나타난 정치적 혼란의 영향들을 반영하면서 전망치의 낙폭이 커졌다는 게 IMF의 설명이다.
JP모건도 24일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0.5%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8일 0.9%에서 0.7%로 내린 지 약 2주 만에 다시 0.2%포인트 내린 것이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건설 사이클 지연과 2024년 4분기와 2025년 1분기 정치적 소란(noise)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됐다"며 "상호 관세를 앞두고 수출은 지속해서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기 전에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하강 시그널이 명확해진 만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가능성이 커졌고, 한국은행도 5월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의 위기와는 다르지만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진 상황인 건 분명하기 때문에 일단 숨통을 틔워주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대로 신성장 동력 확보 등을 위한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