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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우 히로스에 료코는 지난달 8일 시즈오카 현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를 발로 차고 할퀸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유튜브 캡처
이처럼 일본 간호계에는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례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배우 히로스에 료코가 간호사를 때려 체포된 것을 계기로 억눌렸던 분노가 터지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했다고 SCMP가 보도했다. 히로스에는 지난달 7일 교통사고를 당해 이송된 시즈오카 현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중, 간호사를 발로 걷어차고 팔을 할퀴는 등 폭력을 행사해 경찰에 체포됐다.

일본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가 최근 병원에 입원 당시 간호사를 폭행해 경찰에 체포됐다. 사진은 2013년 한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에서 간호사가 환자·가족들에게 언어 및 신체적 폭행, 성희롱 등을 당한 사례가 다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퍼솔 리서치 앤 컨설팅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일본 의료·복지 근로자의 43.1%가 환자와 그 가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65.2%는 언어폭력을 경험했다. 23.3%는 발이나 주먹으로 맞는 등 신체적 폭행을 당했다. 다른 업종 근로자의 경우,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20여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쓰카모토 요코 홋카이도 보건과학대학교 교수는 SCMP에 "정신과 환자가 내 목을 움켜쥐고 조른 적이 있다"면서 "동료들이 환자를 끌어낸 후에야 겨우 상황이 끝났다"고 회고했다.
쓰카모토는 환자들이 채혈 등 일상적인 시술을 하는 의료진에게 폭언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다면서 "일반적인 병원에서 이틀에 한 번씩 이런 일이 벌어지는 듯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간 일본 의료계가 일상적인 간호사 학대에 너무 오랫동안 눈감아왔다"면서 "시급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2022년 6월 10일 촬영된 이 사진은 구마모토에 있는 한 병원의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문제는 간호사 등 의료진이 환자에게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SCMP에 따르면 환자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은 간호사도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호사는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간호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면서 "일본 간호사 중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며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간호사들이 2021년 11월 17일 일본 도쿄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대량 예방 접종 센터에서 브리핑에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간호사 75만명을 회원으로 둔 일본간호협회는 최근 후생노동성에 "병원 내 괴롭힘과 폭력으로부터 간호사들을 더 강력히 보호해달라고 요청한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협회는 "환자와 다른 의료 이용자와의 불가피한 접촉으로 인해 간호사는 괴롭힘에 노출되는 일이 많다"면서 "안전한 근무 환경을 마련하는 게 절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