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영화관세, 영국 등 로케 겨냥…영화계 얼어붙을 것"

외국 영화에 100% 관세를 물린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은 미국 영화산업계가 수 십년간 해외에서 영화를 제작해온 관행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영화 관세는 외국 정부가 할리우드에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표적으로 했다”고 짚었다. 트럼프 입장에선 외국 정부가 자국에서의 촬영을 유도하려고 할리우드에 주는 인센티브에 관세를 물리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사들은 지난 수십년간 해외 촬영분을 늘려왔다. 예를 들어 톰 크루즈의 신작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영국·몰타·노르웨이·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촬영됐다.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블록버스터 '썬더볼츠*'의 주요 장면도 말레이시아에서 촬영됐으며 음악은 영국에서 녹음됐다. 올해 할리우드 최고 흥행작인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캐나다에서 촬영됐다.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2023년 6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 영국 프리미어에 도착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최신작은 2025년 5월 14일 2025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다고 관계자들이 2025년 4월 8일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2023년 6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 영국 프리미어에 도착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최신작은 2025년 5월 14일 2025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다고 관계자들이 2025년 4월 8일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제 트럼프발 영화 관세는 영국·호주·뉴질랜드·헝가리·이탈리아 등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거점이 된 국가들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할리우드가 해외 촬영 관행을 계속해온 이유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수익을 대부분 해외에서 거뒀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북미 시장의 박스오피스 수입은 88억 달러(약 12조2232억원)였던 반면, 해외 수입은 211억 달러(약 29조3079억원)로 북미 시장 수입을 크게 웃돌았다.


그러다 보니 할리우드는 수익성을 고려해 해외에서 촬영하거나 특정 지역에서 인기인 맞춤형 배우를 캐스팅했다. 

호주·영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선 할리우드 제작사가 자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도록 세제 지원을 했다. 호주는 지난해 외국 영화에 대한 세금 혜택을 강화해 '스턴트맨',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등의 영화 촬영을 유치했다. 유니버설스튜디오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영국의 하트퍼드셔에서 촬영하는 대신 영국 정부로부터 8900만 파운드(약 1641억원)의 세금 혜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제작사 입장에선 이처럼 세제 지원을 받아 비용도 줄이고, 특이한 배경을 담아내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 대신 할리우드 제작진들이 영화 촬영 기간 돈을 쓰면서 해당국에선 경제적 효과를 누렸다. 영국영화협회(BFI)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내에서 지출된 영화·TV 제작비 중 48억 파운드(약 8조8539억원)가 외국 기업에서 왔다.  

2025년 4월 28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썬더볼츠* 시사회. EPA=연합뉴스

2025년 4월 28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썬더볼츠* 시사회. EPA=연합뉴스

자연히 미국 내 영화 제작은 줄었다. 비영리재단 필름 LA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의 영화 제작은 40%나 줄었다. 이러다 보니 촬영·분장 등 미국 내 관련 일자리도 줄어드는 추세다. 

제작비 급등 "중소 영화 엎어질 것"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할리우드는 트럼프가 영화 제작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길 원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미 영화 제작사 경영진들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한 상대국들의 보복 관세로 해외 사업에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잭 블랙(왼쪽 끝) 등이 출연한 마인크래프트 무비. 캐나다에서 촬영됐다. AP=연합뉴스

잭 블랙(왼쪽 끝) 등이 출연한 마인크래프트 무비. 캐나다에서 촬영됐다. AP=연합뉴스

설상가상, 미 영화산업계는 비용 상승에 따른 제작 편수 감소, 영화 티켓 가격 인상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마크 영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 교수는 ABC방송에 "트럼프의 시도는 미국 영화 제작사가 해외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관행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미국 내 영화 제작 비용만 더 늘고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영화 제작에 더 많은 돈이 들게 되면, 할리우드는 자연히 마블 등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에 더 의존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중·소규모 예산 영화의 제작 기회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FT 역시 "해외 국가의 인센티브 없이 영화를 만들려면 결국 제작비가 오른다"며 "중소 영화제작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관세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나올 때까지 영화제작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 사이에선 "외국에서 제작된 영화에 관세가 붙으면 미국 관객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시티그룹 CEO "관세 25% 넘으면 영향 심각"

한편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최고경영자(CEO) 등 미국 금융계는 5일 열린 연례 경제행사인 '밀컨 콘퍼런스 2025'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를 잇달아 쏟아냈다. 프레이저 CEO는 이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관세율 최종 결정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결정할 것"이라며 "(관세율이) 25% 이상이라면 실질적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이날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대규모 공급 충격에 직면한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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