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회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아티프 미안(Atif Mian)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석좌교수가 지난 8일 연세대학교 대우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한국도 과도한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은 미국과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습니다.”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거시경제학자인 아티프 미안(Atif Mian)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석좌교수가 지난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가계부채 급증이 당장 금융위기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소비를 제약해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건 확실하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결국 부채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 부동산 기업 에버그란데(헝다그룹) 파산처럼 관련 위기가 터지고, 성장의 발목을 잡힐 수 있다”면서 “한국도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미안 교수는 가계부채ㆍ금융위기ㆍ경제성장ㆍ불평등 간 상호작용에 대한 선도적인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는 2014년 출간한 저서 『빚으로 지은 집』에서 ‘레버드 로스(levered lossㆍ빚을 내 증폭된 손실)’라는 개념을 통해 가계부채와 경제위기의 인과관계를 조명했다. 집값이 폭락하면 빚을 낸 사람일수록 더 큰 타격을 입고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데, 이는 결국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부채 의존 경제→소비 주도 경제로 바꿔야"
그는 “한국에서도 주거비ㆍ생활비가 높아지면서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이 집을 더 쉽게 살 수 있어야 보육 서비스, 문화생활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소비가 늘어 내수가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은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경제 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비를 늘리는데, 한국은 소비 대신 주택 구매 등 자산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주택 공급 확대, 주택 관련 세금 부과 등을 꼽았다. 그는 “과도한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토지세ㆍ보유세 등 주택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를 억제할 수 있다”면서도 “이런 세금엔 항상 반대가 있기 때문에, 그 세수를 젊은 층의 소득세 인하에 활용해서 소비 여력을 늘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채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미안 교수는 “정부가 재정 지출로 민간 소비를 늘리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소비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는 구조에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재정 지출을 통해 수요를 떠받치는 ‘강제적 재정 지배(forced fiscal dominance)’는 일본이 이미 빠진 함정”이라고 했다. 또한 “민간 부채가 과도해지면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그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유의해야 한다”며 “중앙은행이 부채의 ‘인질’이 되어 금리인하 압박 등 통화정책에 제약을 받게 되는 측면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16회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아티프 미안(Atif Mian)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석좌교수가 지난 8일 연세대학교 대우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정부 재정으로 소비 늘리려 해선 안돼"
그는 또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자독식(winner-take-all)’ 구조에선 극소수의 승자만이 과실을 가져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비 주체로서의 역할조차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면서다. 그는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이 극단적으로 발전해 모든 일을 대체하게 된다면, AI를 소유한 극소수 개인이나 국가가 모든 부를 독점하게 된다”며 “기술 발전의 이익이 사회 전체에 보다 고르게 분배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안 교수는 지난 7일 연세대학교가 수여하는 제16회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조락교경제학상은 국내외 경제학자들의 연구 역량을 북돋고 학문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2007년 제정된 상이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수상자에게는 상금 1억원이 수여된다. 미안 교수는 이번 수상에 대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방한은 제 연구를 돌아보는 기회일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대해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