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명 놀래킨 '박정자 부고' 문자…"상복 사절, 부의금 원하면 내시라"

25일 본인 장례식 미리 치르는 배우 박정자

지난 4월 12일, 배우 박정자(83)의 지인 150여 명은 가슴이 철렁했다. 박정자로부터 ‘부고’라고 쓰여진 문자 메시지를 받아서다. ‘당신이 이 부고를 볼 때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침묵이 새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입장할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아리송하지만, 실제 고인이 된 건 아니다. 배우로 낯익은 유준상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의 마지막 장례 장면 촬영을 핑계로 자신의 ‘사전 장례식’을 연다는 얘기다.

영화는 박정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는다. 한 여배우를 통해 늙어감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유준상이 박정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토대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배우는 기억을 잃어가는 80대 여배우 ‘그녀’ 역의 박정자 단 한사람. 영화감독 정지영, 뮤지컬 배우 최정원 같은 ‘절친’들이 잠시 얼굴을 비추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는 ‘경계없는’ 영화다.

늘 “삶이란 죽음을 위한 리허설”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박정자는 망자가 바닷가에서 상여를 스스로 들고 나가는 장례 장면을 스스로 구상했고, 지인들을 사비로 초청했다. 25일 강릉 순포해변에 초대받은 손님은 가수 장사익, 배우 송승환 같은 ‘셀럽’부터,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같은 공연계 인사, 정병국·조윤선 같은 정치인 출신까지 버라이어티하다. 강릉 선교장을 통째로 빌려 숙식을 제공하고, 토크쇼와 음악회 같은 이벤트도 준비했다. 15일 만난 그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축제다. 춤추고 사진 찍고 놀면 된다. 최근까지 자주 만나고 내 무대를 보러 오신 분들만 초대했으니 안 불렀다고 섭섭해 마시라”며 웃었다.

상복은 사절, 부의금은 원하면 내시라

자신의 ‘부고장’을 내고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마지막 장례 장면 촬영에 지인 150여 명을 초청 한 배우 박정자. “삶은 죽음을 위한 리허설일 뿐”이라는 게 그의 변이다. 김정훈 기자

자신의 ‘부고장’을 내고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마지막 장례 장면 촬영에 지인 150여 명을 초청 한 배우 박정자. “삶은 죽음을 위한 리허설일 뿐”이라는 게 그의 변이다. 김정훈 기자

장례란 게 명복을 비는 거잖아요.
“그저 삶과 죽음이 경계없음이에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모든 순간이 죽음의 리허설이거든. 내 상여가 나가는 장례식인데 쓸쓸하면 안 되고, 모르는 사람이 오는 게 용서가 안 돼서 친구들을 초대했죠. 장난기가 발동해 초대장이 아니라 부고를 냈는데, 30년째 남자친구인 이충걸 작가가 하루만에 써줬어요. 사람들은 놀랐겠지만 사실 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유준상 감독이 멍석 깔아준 거죠. 어떤 분은 부의금을 내도 되냐고 묻던데, 꼭 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연말에 후배들에게 주는 ‘박정자 상’에 보태려 해요. 죽고 나서 또 할 거냐고? 그땐 이미 죽었으니까 모르죠.(웃음) 살아있을 때 챙기니 즐겁잖아요. 그저 내가 남은 삶에서 조금 더 지혜로워지기를 바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상복을 입고 가야 하나요.
“축제인데 뭘. 예전에 금호그룹 박성용 회장 장례식에 내가 초록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회장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예요. 이번 촬영도 망자인 내가 하얀 한지로 만든 미니어처 상여를 들고 나가는 설정인데, 나부터 수의가 아니라 푸른색 원피스를 입어요. 나는 그런 상식적인 거 깨는 사람이거든. 손님들은 미니어처 만장(輓章)을 하나씩 흔들면서 따라오면 되요. 거기엔 내가 출연한 연극 제목들을 손글씨로 다 써놨죠. 페드라, 피의 결혼, 햄릿. 딱 150개만 골랐어요.”
 

죽음에 관한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찍으셨나요.
“너무 기쁘고 즐겁게요. 에너지가 밑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할 즈음 유준상 감독을 만나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죠.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촬영을 해도 쌩쌩해요. 2억짜리 저예산 독립영화라 카메라도 한두 대밖에 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죠. 유 감독과 인연이 없었는데, 죽음과 가까이 있는 연극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결국 완전히 내 이야기가 됐는데, 운명이라 생각해요. 모든 걸 최선으로 다 해주고 싶은데 카메라 앞에서는 아마추어라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죠.”
 

죽음이 두렵진 않으신가요.
“난 무대서 많이 죽어봐서 그런지 죽음이 낯설지 않아요. 죽는 게 참 편해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할 때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조명이 따뜻하게 비추면서 딸이 독백을 시작하면 스르르 잠이 들죠. 죽음이 이런 거겠지, 참 편안하다. 세상 근심 다 잊어버리고 누워있는데, 꽤 괜찮더군요.(웃음) 곧 내가 우리 엄마 돌아가신 나이가 되거든. 꽉 채워 살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없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서겠지.”
 
과연 박정자는 누구보다 치열한 배우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래 한해도 빠짐없이 무대에 올랐다. 두 자녀를 낳을 때도 임신 막달까지 무대에 섰고, 모유를 먹이면서 방송을 했다. “그저 내 삶에 충실했을 뿐이고, 자랑할 건 그것밖에 없어요. 돌아보면 엄마, 며느리로선 미안할 정도로 이기적이었지만,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살 것 같아요. 연극배우는 운동선수와 똑같아서 계속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미련하게 쉬지도 않고 훈련을 한 건데, 그 미련함이 오늘까지 나를 버티게 했죠. 앞으로도 쉴 생각 없어요.”

대사 암기에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왜 없어요. 어제 만난 사람 이름도 생각 안 나는데, 그럴 땐 포기하지 말고 계속 머리를 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꾸자꾸 생각하다 떠오르면 너무 기쁘고.(웃음) ‘고도를 기다리며’의 럭키 같은 역할은 다시 못할 것 같아요. 마치 무당이 작두 타듯 밑도 끝도 없는 말을 8분 동안 속사포로 쏟아내는 건데, 어느 날 다 쏟아내고 정적이 흐를 때 한 남자 관객이 혼잣말로 ‘브라보’하고 툭 뱉더군요. 그 한마디가 귀에 딱 꽂히는 순간 모든 힘든 게 눈 녹듯 사라졌죠. 뉘신지 꼭 찾아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그런 관객이 바로 연극의 힘이거든요.”
 
그는 14일에도 실험적 형식의 1인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을 마친 참이었고, 8월 늘푸른연극제에서 혜경궁 홍씨 이야기인 ‘꿈속에서 다정하였네’ 낭독공연도 준비중이다. 여전히 쉼없이 달리고 있는 셈이다.

박정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부고장. “30년째 남자친구” 이충걸 작가가 그를 대신해 썼다. 김정훈 기자

박정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부고장. “30년째 남자친구” 이충걸 작가가 그를 대신해 썼다. 김정훈 기자

어제 낯선 형식의 공연이 힘들지 않으셨나요.
“나 자신을 테스트하는 무대였어요. 무대에 올라 대본을 처음 받는 거라 자신이 없었는데, 막상 너무 재밌어서 신들린 듯 해냈죠. 관객들도 너무 호응해줬고요. 그간의 에너지들이 다 쌓여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에너지라도 자꾸 만들어서 단련해야죠.”
 

절대 은퇴는 안하시겠네요.
“내 사전에 은퇴란 말은 없어요. 외국에서 ‘오셀로’ 공연을 할 때 이아고 역 배우를 누가 객석에서 총으로 쏴죽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나도 누가 그렇게 쏴줬으면 좋겠어. 그만큼 악역을 잘했다는 건데, 배우로서 너무 멋진 죽음이잖아요. 그런 명배우는 못되더라도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소박한 꿈이에요.”
 
‘장례식’에서 손님들을 맞을 강릉의 한 정원에는 박정자가 기증한 나무의자 3개가 있다. ‘인생이란 다만 걷고 있는 그림자’라는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한 구절을 써 넣은 ‘박정자 의자’와, 그와 친자매처럼 끈끈하게 연극판을 지켜온 동지 손숙, 윤석화 의자다. 하지만 손숙은 공연 일정으로, 윤석화는 투병 중이라 ‘문상’은 올 수 없다. “맥베스의 대사처럼 한순간 무대 위에 나타나 몇 마디 뱉고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단역배우에 불과한 게 인생이더군요. 내 장례식에 윤석화가 못 와주는 게 제일 속상하고 마음 아파요. 의자는 잠시 편하게 쉬어가는 곳이잖아. 같이 있고 싶어서 의자를 만들었어요. 우리 세 자매는 같이 있어야 하는데, 혼자 따로 있으니 너무 힘이 드네요.”

몇 마디라도 내뱉을 수 있다면 계속 무대
그는 요즘 윤석화가 남긴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돕고 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그가 간직한 대본·영상·사진, 인터뷰 스크랩 등을 기증하는 일이다. 그 자신은 지난해 이미 배우로서 최초로 기증을 마쳤다. “내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록원의 문을 두드렸어요. 차마 내가 버릴 수는 없고, 죽으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테니까요. 이제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요. 소중한 추억이지만, 보고 싶으면 기록원에 가서 보면 되죠. 윤석화 자료도 기록원이 정리하도록 연결하고 있는데, 그게 내 선물이에요. 그 친구가 정리 못하고 갈 테니까.”

그는 삶을 정리할지언정 무대를 정리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몇 마디라도 내뱉을 수 있다면 계속 무대에 설 것”이기에 마지막 작품이 뭐가 될지도 결코 알 수 없단다.

늘 스스로 무대를 개척해 오셨는데요.
“조선왕조 비운의 세 여인을 소환하는 낭독극 프로젝트를 누군가 완성해야 되요. 정순왕후는 ‘영영이별 영이별’, 혜경궁 홍씨는 ‘꿈속에서 다정하였네’로 내가 소환했는데, 마지막 명성황후는 여력이 없었죠. 너무도 비극적인 삶을 산 여인들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필요하고, 그게 배우의 역할이잖아요. 가능하면 능에서 하고 싶어요. 그들의 영혼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서 자기가 못 다한 이야기를 해주는 배우에게 ‘고마워요’라고 속삭이는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저야말로 배우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장례식이 코앞인데, ‘배우’는 여전히 연극을 꿈꾸고 있다. 치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