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경기 광주경찰서 앞에서 조인경(35) 경장이 심리검사지를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율 기자
신체에 남아있는 흔적보다, 마음의 흔적이 더 심하거든요.
경기 광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학대예방전담경찰관(APO)으로 근무하는 조인경(35) 경장은 ‘마음 순찰’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지난 15일 이렇게 말했다. 조 경장은 광주서에서 진행하는 ‘토닥토닥, 마음순찰’ 프로젝트의 주역을 맡고 있다. 심리학 석·박사 학위와 임상심리사 1급, 미술심리상담사 1급, 상담심리지도사 1급 등의 자격증을 현장에서 십분 활용하고 있다. 경기 광주서가 시행하는 ‘마음순찰’ 프로젝트란 관계성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초기 심리 평가 후 전문기관에 연계하는 과정을 말한다. 112에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위험도를 평가하고, 연락이 안 되거나 안전 여부가 확인이 안 되는 가정에 대해선 직접 방문한다. 심리 검사 및 현장 확인을 진행한 뒤 피해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병원에 연결한다. 진단부터 회복까지 원스톱 진행이 가능한 셈이다. 1년에 세 번 이상 신고가 들어오거나 고위험 평가를 받은 가정에 대해선 주기적인 관리도 진행된다.
마음순찰의 준비물은 우울 및 불안 등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 국립정신건강센터 배포 심리 검사지와 백색의 빈 종이 등이다. 빈 종이의 목적은 미술 심리 상담이다. 예를 들어 검사 대상이 ‘비가 오는 날 내 모습’이라는 주제로 빈 종이에 그린 그림을 토대로 그의 심리 상태를 추정하는 것이다. 조 경장은 “그림을 통해 대상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어떻게 외부에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인경 경장이 현장에서 심리 검사를 진행할 때 사용하는 국립정신건강센에서 배포한 심리 검사지. 전율 기자
최근 조 경장은 한국인 남편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본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 A씨를 도왔다고 전했다. 조 경장은 상황을 확인한 즉시 A씨와 생후 15개월 아이를 임시 숙소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가해자인 남편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조 경장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A씨를 상대로 심리 평가를 진행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조 경장은 “A씨가 손을 잡으면서 어설픈 한국말로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닌데도 손을 잡아줘서 고맙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 경장은 관계성 범죄 피해자에 대해선 2차 피해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경장은 “관계성 범죄는 반복적이고 은밀하게 피해자의 심리와 일상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데, 가해자가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 경장이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건 어떠한 말이 아닌 기다림이다. “아무 말 없이 범죄 피해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게 무엇보다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경기 광주경찰서에서 조인경 경장이 기자에게 직접 마음순찰에 활용하는 심리 검사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전율 기자
조 경장의 목표는 마음순찰 프로젝트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조 경장은 “현재 경기 광주 지역 내 의료기관 및 상담센터 등과 정식 업무협약(MOU) 체결을 협의하고 있다”며 “마음순찰이 보편화된다면 관계성 범죄 피해자들이 더 빠르게 회복해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