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 프로농구 LG 첫 우승 이끈 '39세 반지 수집가' 허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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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 기자 사진 박린 기자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최고령 MVP를 수상한 창원 LG 허일영. [사진 KBL]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최고령 MVP를 수상한 창원 LG 허일영. [사진 KBL]

 
“플레이오프(PO)를 10시즌째 치러보니, 성공·실패에 상관없이 일단 (공을) 던져야 한다. 슛을 쏘면 들어가거나 안 들어가나 둘 중 하나지만, 망설이다가 던지지 못하면 성공 확률은 0%다.”

프로농구 창원 LG를 창단 28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첫 우승으로 이끈 허일영(39)은 18일 “인생도 농구랑 똑같다”고 했다. 3연승 뒤 3연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LG는 전날(1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7전4승제) 7차전에서 서울 SK를 62-58로 잡고 시리즈 전적 4승3패로 챔피언이 됐다.

4쿼터 종료 5분36초를 남기고 55-45로 달아나는 결정적인 3점포 등 7차전에서만 3점슛 4개를 성공시킨 1985년생 ‘불혹의 슈터’ 허일영은 역대 최고령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그는 또 다른 세 팀(2016년 오리온, 2022년 SK, 2025년 LG)에서 챔프전 우승 반지를 수집했다.

그는 “‘늙어서 팀에 민폐 끼치지 마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상복도 없었고, 신인 때부터 조연이라 생각하고 뛰었는데, 이 나이에 생애 첫 MVP를 받았다”며 감격했다. 앞서 지난 시즌 SK 주장이었던 그는 팀이 PO에서 탈락한 뒤 ‘노인즈(노인들)’라는 혹평 속에 사실상 팀에서 쫓겨났다. 그래서일까. 그는 “상대가 SK라서 (내 존재감을) 더 증명하고 싶었다”라고도 했다.

창원 LG의 우승을 합작한 허일영과 조상현(왼쪽) 감독. [사진 KBL]

창원 LG의 우승을 합작한 허일영과 조상현(왼쪽) 감독. [사진 KBL]

 
SK에서 밀려난 허일영은 2011~12시즌 오리온에서 선수로 함께했던 조상현(49) 감독이 이끄는 LG로 옮겼다. 그는 “수비에 있어 나이만큼이나 욕을 많이 먹었다. 감독님이 한고집 하는 분이라, 다 내려놓고 상대를 열심히 쫓아다녔다”고 했다.


조 감독은 창원체육관 감독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비디오 분석으로 수비 간격까지 조정한다. 별명까지 ‘숙소 귀신’이다. 조 감독은 LG 선수단 총 보수액(약 23억5000만원)의 3분의 1을 받는 가드 두경민과 슈터 전성현을 각각 팀워크와 부상 문제로 PO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대신 지난 시즌 백업 가드 유기상(24)과 양준석(24)을 주전으로 뛰게 했다. 조 감독의 결단에 “팀이 먼저”라며 동감을 표한 허일영은 “둘 다 어리지만, 능구렁이 같다”고 평가했다. 

3점슛을 쏘는 허일영. [뉴스1]

3점슛을 쏘는 허일영. [뉴스1]

 
이번 챔프전은 적은 점수가 말해주듯 막고 또 막는 처절한 승부였다. 그래도 고비마다 허일영이 왼손으로 쏜 3점슛은 그의 별명인 ‘허물선’처럼 아름다운 포물선 궤적으로 림에 꽂혔다. 고교 시절 센터였다가 대학에서 슈터로 전향한 그는 블록슛을 피하기 위해 팔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슛을 한다. 개인 통산3점슛 831개인데 성공률이 39.8%다. LG와의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그는 “대학팀과 연습경기를 하면 (상대 선수와) 20살 차이가 나는데도 할 만하다. 아직 1~2년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두 LG 트윈스 선수들은 이번 프로농구 PO 기간에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농구 슛 포즈로 LG 농구단의 우승을 기원했다. 허일영은 “사실 부산 출신이라 원래 롯데를 좋아하는데, 친한 동생인 (롯데 출신 손)아섭이가 아직 우승을 못 해봤다”며 창단 28년 만의 첫 우승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이어 “2년 전 29년 만에 우승한 트윈스(야구)의 기운이 세이커스(농구)에 전해진 것 같다”며 “올해 트윈스도 동반 우승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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