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애넌데일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제21대 대선 재외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이날 가장 먼저 투표소를 찾은 50대 송정호 씨는 “이번처럼 투표를 기다렸던 적이 없었다”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투표소로 향했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을 거치면서 한국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중도층에선 한국의 정치 문화 자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요구가 적지 않다”고 했다.
출근길에 투표소에 들렀다는 김현진(20대) 씨는 “미국의 직장 동료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진 한국의 계엄과 탄핵 사태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했다”며 “이 때문에라도 미국에서도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실 미국인 동료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에 물을 때마다 부끄러웠다”며 “그래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까지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애넌데일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제21대 대선 재외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한국에서 고등학교 사회 교사를 하다 이민 온 황성희(40대) 씨는 “교사로 재직할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노래로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불렀다”며 “이제 성년이 됐을 내 제자들에게 이번 선거가 투표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필라델피아 피츠버그에서 투표하기 위해 전날 남편과 함께 4시간여 운전해왔다는 성진옥(40대) 씨는 “한국 정치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화를 내는 엄마를 보고 한국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계속 이유를 묻더라”며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선 K팝 정도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투표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그나마 가장 가까운 버지니아까지 왔다”고 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민은 “교민 사회에선 답답한 한국 정치에 대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기류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애넌데일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제21대 대선 재외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투표소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추천을 받은 투표 참관인이 한 명씩 나와 있었다. 이들 역시 “한국은 물론 미국의 정치가 모두 양극화가 첨예해지면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정치 성향을 밝히거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됐다”며 “외국에서 더 강하게 뭉쳐야 할 소수 그룹인 한인 사회가 국내 정치 문제 때문에 갈수록 양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번 대선의 재외투표는 현지시간 20일 오전 8시부터 25일 오후 5시까지 전 세계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유권자 수는 총 25만8254명이다. 2022년 제20대 대선(22만6162명)과 비교하면 14.2% 증가했고, 2017년 제19대 대선(29만4633명)보단 12.3% 줄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애넌데일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제21대 대선 재외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조현동 주미대사도 이날 오전 배우자와 함께 투표에 참여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버지니아 투표소에서 배우자와 함께 투표를 마친 조현동 주미대사는 “재외투표는 우리 재외동포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대선 이후 한·미 관계에 대한 전망을 묻는 말에는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 등 모든 분야의 국가이익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외교관계”라며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미동맹 관계가 굳건히 유지되고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