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모녀'의 비극…200만원 넘는 병원비, 엄마는 절망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21일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21일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전북 익산에서 모녀가 잇따라 숨진 사건과 관련 안타까운 사연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생계·의료급여를 오랜 기간 받다가 끊겼으나, 다시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됐음에도 혜택을 못 본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보건복지부·익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익산시 모현동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된 A씨(60대)와 그의 둘째 딸 B씨(20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A씨는 발견 당시 몸에 쪽지와 집 열쇠를 지닌 상태였다. 이 쪽지에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이 집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A씨 거주지인 아파트 방 안에서 그의 딸 B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B씨 역시 힘겨웠던 삶에 대한 글을 남겼다고 한다. 경찰은 문서 작성 시점이 지난 3월 말인 점으로 미뤄 딸이 이 무렵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A씨는 먼저 세상을 등진 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슬픔을 견디다가 끝내 숨진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 딸 먼저 보낸 엄마…병원비 부담 등 호소

이들 모녀는 지난해까지 큰딸 C씨와 셋이 살았다. 세 모녀는 2006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생계·의료·주거급여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어머니 A씨가 호흡기 관련 지병으로, B씨도 중증 우울증·신경증으로 각각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큰딸 C씨는 근로 능력이 있어서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조건부 수급자’로 분류됐으나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2인(A·B씨)에 대한 생계(100만원)·주거(20만원) 급여가 세 모녀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큰딸이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하게 됐다. 이후 가구 소득 기준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생계·의료급여는 끊어졌고, 주거급여 20만원만 받게 됐다. A씨와 딸 B씨는 둘 다 병을 앓고 있어 매달 상당액의 병원비가 필요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급여가 끊긴 뒤 두 모녀의 고통은 더 커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A씨는 생전에 딸 B씨 몫의 병원비 200여만원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시 측은 지난해 1월 생계·의료급여 지급 중지를 전화로 알리면서, 큰딸이 따로 살면 두 모녀는 급여를 계속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고 한다. 소득이 있는 가구원이 함께 살지 않으면 남은 2명은 다시 급여 지급 대상(생계·의료 각각 중위소득 32%·40% 이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딸이 바로 전월세 집을 구해 나가는 등 주거를 분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끊긴 복지 다시 받을 수 있었는데…‘신청주의’ 한계

안타까운 지점은 올해 1월 큰딸이 결혼해 분가한 뒤에도 두 모녀가 생계·의료급여를 받지 못한 점이다. 급여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수급자가 직접 지자체에 신청하고, 금융정보 제공 등에 대해 동의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익산시 관계자는 “우리 시스템상 실시간으로 수급자 가구의 전입·전출이 확인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실정이라 큰딸의 전출 사실을 뒤늦게 알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1년에 두 차례 수급자 혼인·소득 등에 대한 변동사항을 전국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오는 7월쯤에는 (큰딸의 전출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모녀가 다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전에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각지대 발굴 체계에도 포착 안돼…지자체는 인력난

지난 2014년 2월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주택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숨진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봉투. 연합뉴스

지난 2014년 2월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주택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숨진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봉투. 연합뉴스

 
개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 대상자여도 서비스에서 누락되는 ‘복지 신청주의’로 인해 안타까운 사례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 등이 벌어지며 정부는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제도를 보완해왔으나, 메워지지 않은 빈틈이 남아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위기가구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단전·단수, 건강보험료·통신비 체납 등 위기 징후 정보를 47종까지 늘려 모니터링하고 있다. 하지만 익산 모녀의 경우 체납 내역이 없어 이런 안전망에도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강화하면 좋겠지만, 인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현장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이미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고 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 제도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인 탓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데, 이를 발굴하기 위한 여러 부처의 사업이 쏟아지면서 일선 주민센터에서는 업무 부담을 호소한다”라며 “중복되는 사업을 통합하고 필요한 곳에 인력을 더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급여에 대한 공무원의 권한을 강화해 필요한 경우 직권으로 급여가 지급될 수 있도록 결정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도 공무원의 직권신청이 가능하지만, 본인 동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전북희망나눔재단은 “위기가정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의 현장 판단권을 강화해서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집행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