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외치더니 흉물로 방치…50억 자전거 주차타워의 민낯

울산 태화강역 자전거 주차타워. 김윤호 기자

울산 태화강역 자전거 주차타워. 김윤호 기자

전국 주요 철도역에 설치된 '자전거 주차타워'가 가동을 멈춘 채 수년째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으나, 이용률 저조와 반복적인 기계 고장, 관리 책임에 대한 기관 간 이견이 맞물리면서 사실상 방치돼 있다. 

 울산 태화강역 자전거 주차타워. 김윤호 기자

울산 태화강역 자전거 주차타워. 김윤호 기자

지난 20일 찾은 울산시 남구 태화강역 광장. 지상 4층 높이 원통형 건물에 '자전거 주차장'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1층 출입구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먼지가 보였다. 기계 패널에는 '주차 불가' 등의 문구가 선명했다. 현장 인근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던 이상범(69·울산 남구) 씨는 "자동차 주차 타워형태인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가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 멀쩡한 건물을 저리 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전거 주차타워 출입문. 김윤호 기자

자전거 주차타워 출입문. 김윤호 기자

자전거 주차타워는 무인 기계식이다. 자전거를 출입구에 세워두면 자동으로 기계가 타워 내부로 옮겨 보관하고 필요하면 자동 반출하는 방식이다. 울산 남구청 관계자는 "2010년 한국철도공사가 6억여 원을 들여 설치했고, 관리 권한은 지자체에 위임됐다"며 "이후 기계 고장이 잦아 수차례 수리를 반복하다가 2019년부터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주차타워 설치 현황. 자료 각 지자체, 철도역

자전거 주차타워 설치 현황. 자료 각 지자체, 철도역

본지 취재결과, 타워형 자전거 주차장은 2010~2012년 사이 서울 영등포역, 울산역, 태화강역, 대구역, 광주역, 서대전역, 천안아산역 등 7곳에 설치됐다. 한국철도공사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이 지원한 '철도역 환승 동선 개선 사업'의 일환이었다. 녹색성장을 슬로건을 내세운 당시 정부는 친환경 교통수단 장려와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내세우며 50억 원의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 이렇게 대구역에는 9억여원을 들여 지상 1층·지하 5층 규모의 타워를, 서울 영등포역에는 7억여원으로 지하 8층 규모의 타워를 지었다. 이 외에도 천안아산역(7억여원, 지상 4층), 울산역(7억여원, 지상 1층), 광주역(7억5000여만원, 지상 3층), 서대전역(6억6000여만원, 지하 2층 지상 3층) 등지에 자전거 주차타워를 설치했다.

대구역에 있는 자전거 주차타워. 1층에 자전거를 넣으면 지하에서 보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대구역 관계자 제공

대구역에 있는 자전거 주차타워. 1층에 자전거를 넣으면 지하에서 보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대구역 관계자 제공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감사원은 2013년 당시 국회의원(임내현 의원) 제출자료에서 "4월 기준 전국 주요 철도역의 자전거 주차장 이용률이 10~20%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여러 지자체가 주차타워 기계 고장을 수리하면서 유지비 부담 등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15년 울산역을 시작으로 서대전역(2018년), 태화강역(2019년), 광주역·대구역(2020년), 천안아산역(2022년) 등 운영이 차례로 중단됐다. 대구역 관계자는 "2020년 한 차례 수리했지만, 다시 고장 나 지금은 사실상 폐쇄 상태"라고 전했다.


운영 중단 이후에도 이견은 진행형이다. 자전거 주차타워 관리 책임과 관련해 한국철도공사와 지자체 간 입장 차이가 이어지면서다. 한국철도공사 측은 "설치 및 운영 초기에는 공사가 책임을 맡았으나, 이후 관리 권한이 지자체에 이관됐다. 10년이나 지난 현재 개입하는 것에 불편함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지자체들은 "시설 설치 주체가 철도공사였던 만큼 관리 책임을 모두 지자체에 넘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울산 남구청은 철도공사와 협약 관련 문서를 교환하며 책임 소재를 지속해서 논의 중이다. 광주 북구청 관계자는 "2019년 협약 종료 이후 광주역 자전거 주차타워 관리 권한 책임은 구청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대전역 한 직원은 "자전거 주차타워 관리는 지자체에서 한다고만 담당자에게 들었다. 역 차원에서 가동 중단한 타워에 대한 활용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안아산역 자전거 주차타워. 사진 아산시

천안아산역 자전거 주차타워. 사진 아산시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경희대 행정학 박사)은 "수요 예측 부족, 고장에 대한 대비 미흡, 유지비 부담 등을 무시하고 진행한 사업"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사업 실패를 인정하고 철거 등 현실적인 활용 방안을 빠르게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수요를 고려치 않은 보여주기식 행정, 말은 친환경인데 실제로는 과잉 토건 사업의 형태가 되면서 예산 낭비를 가져왔다"며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시민을 위한 시설로 개선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