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머스크와의 관계에 대해 "끝났다"고 직접 말했다. 서로를 향해 막말을 퍼부으며 정면충돌한 데 이어 결국 '공개 결별'한 것이다. 세계 최강 권력자와 세계 최고 부자의 이런 파국은 미 정·재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관측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와 머스크의 결별에 진정한 승자는 없을 것"이라며 두 사람 모두 잃을 것이 많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날 NBC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머스크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그와의 관계가 끝난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했다. 같은 날 머스크는 트럼프를 공격한 소셜미디어 글을 삭제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트럼프의 마음은 이미 돌아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때 세기의 브로맨스를 자랑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을 맞은 결정적인 이유론 두 가지가 꼽힌다. 우선,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직에서 지난달 말 물러난 직후 머스크의 측근인 재러드 아이작먼에 대한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 지명을 트럼프가 돌연 철회한 점이 머스크를 크게 자극했다고 전했다.
머스크가 130일간 DOGE 수장직을 수행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각료들과 자주 충돌해 트럼프와의 관계에 균열은 시작됐다. 그러나 당초 백악관을 조용히 떠날 생각이던 머스크가 이 일에 모욕감을 느껴 '트럼프 저격수'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머스크가 트럼프의 감세 법안을 공격한 건 전면전의 도화선이 됐다. 머스크는 트럼프가 "크고 아름다운 법"이라고 자부하는 이 법을 두고 지난 3~4일 연속해서 "역겹다" "폐기하라"고 비판했다.
이에 5일 트럼프가 머스크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발언한 후 두 사람은 소셜미디어에서 공개 설전을 벌였다. 머스크는 "내가 없었으면 트럼프는 선거에서 졌을 것이다. 배은망덕하다"고 직격한 데 이어 트럼프 탄핵 요구 게시글에 "찬성"이란 의견을 달았다. 트럼프는 "일론은 미쳤다"며 "가장 쉬운 예산 절감 방법은 일론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과 계약을 끊는 것"이라고 위협했다.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열린 머스크 고별식에서 함께 있는 트럼프와 머스크. AP=연합뉴스
트럼프와의 결별로 머스크는 사업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NASA와 미 국방부 등은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대안을 찾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현재 미 정부 기관들은 스페이스X의 로켓과 우주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지만, 트럼프와 머스크의 충돌을 계기로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다른 기업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스페이스X가 미 국방부, NASA와 맺은 누적 계약 규모는 공개된 것만 220억 달러(약 30조원)에 이른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충돌한 5일 뉴욕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14%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트럼프 측은 머스크의 마약 복용설도 정조준하고 있다. 트럼프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현지 언론에 "머스크의 마약 복용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역시 측근들에게 머스크를 두고 "대단한 마약 중독자"라고 지칭했다고 전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로선 공화당 내 입지가 흔들리는 정치적 손해를 볼 수 있다. 머스크는 앞서 "감세 법안을 지지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정치 자금을 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감세 법안은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는데, 가뜩이나 해당 법안에 대해 "국가 부채를 늘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일부 의원들이 머스크를 의식해 반대할 경우 법 통과가 무산될 수 있다. 머스크는 지난 5일 "트럼프의 임기는 3년 반 남았지만, 난 앞으로 40년 넘게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머스크가 이끈 트럼프에 대한 테크 업계의 기부와 젊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지지가 이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두 사람의 결별은 지난 대선에서 머스크를 따라 트럼프를 지지한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에겐 '누구 편'에 설지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NYT는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백악관 인공지능(AI)·가상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색스가 머스크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외신은 "현재 상황을 볼 때 트럼프와 머스크의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WP),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BBC)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