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孔子). 바이두
공자는 이렇게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길다면 길지만 또 짧다면 짧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단순하지만 현명한 조언이다. 그래서 더 실용적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3대(代)까지 이어지는 부자가 드물다’란 말도 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바이두
‘안빈낙도’ 가르침과 어울리는 삶을 살았던 제자로는 안회(顔回)가 으뜸이지만, 원헌(原憲)도 이에 못지않다. 안회는 안타깝게 요절해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렸다’며 애통해했다는 그 제자다. 원헌은 ‘원헌이 질문했다’로 시작하는 논어 ‘헌문(憲問)’편에 등장하는 제자다.
공자는 원헌을 아끼고 신임했다.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잠시 사구(司寇) 직책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원헌에게 가재(家宰) 임무를 맡기면서 상당히 높은 녹봉을 제안했다. 원헌은 완강히 사양한다. 그저 스승을 돕기 위한 마음에서 기꺼이 떠맡은 지위였기 때문이다.

원헌(原憲). 바이두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공(子貢)은 다재다능(多才多能)했다. 상업 활동에도 어둡지 않아 윤택한 삶을 살았다. 그는 공자와 제자들이 고생하며 외국을 떠돌던 시기에도 재정적 문제라면 늘 앞장서 해결하는 수완가였다.
공자 사후에, 사방으로 흩어진 제자들이 간혹 재회하는 일이 있었다. 하루는 노(魯)나라에서 가난하게 사는 원헌의 집을 위(衛)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부유하게 살던 자공이 방문했다. 도착해보니 원헌의 집에 이르는 골목은 너무 좁았다. 어쩔 수 없이 자공은큰길에 마차를 세우고 걸어서 원헌의 집으로 향했다. 원헌이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작은 집 앞에 서서 그를 영접했다. 비록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갖춰 입기는 했으나, 자세히 보니 원헌의 옷은 낡았고 신발도 뒤축이 아예 없었다.
자공이원헌의 행색을 보고 걱정하며 먼저 말을 건넨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병에 걸리셨습니까?” 이 말을 받아 원헌이 바로 응수한다. “재물이 없는 것은 가난이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병(病)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가난한 것이지, 병에 걸린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의 함의(含意)를 알아들었기에 자공은 부끄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동서고금에 가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군가 물질적으로 궁핍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불행을 가난 탓으로 돌리기 쉽다.

AI 생성이미지. 바이두
안빈낙도. 실천이 꽤 어려운 네 글자다. 무엇보다, ‘안빈낙도’에 대한 해석이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진정한 안빈낙도의 삶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경지로 해석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조금 불편한 삶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공자는 안빈낙도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높은 수준의 삶인지를 몸소 충분히 겪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차이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