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철학 안맞으면 해임"…與, 尹정부 기관장 내쫓는 법안 냈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첫 국무회의 도중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 이주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부총리 등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국무위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사진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첫 국무회의 도중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 이주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부총리 등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국무위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사진 대통령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윤석열 정부 출신 고위직 인사들과의 동거가 이어지며 불편한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0일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이 대통령에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장을 내쫓아선 안 된다. 여당이 방통위법을 개정해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고 한 장면이다. 이 대통령은 “잘 모르는 일”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통합과 실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당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등에 대해 전방위로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법안 개정을 통한 합법적 퇴출 방안이 먼저 시도되고 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도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중대한 불일치 사유가 있다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임기 말 대통령의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금지하거나 대통령과 공공기관 임원의 임기를 맞추는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었지만,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을 내쫓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진숙 위원장이 언급한 방통위법 개정안은 지난 4월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발의한 것인데, 법 시행일에 맞춰 방통위 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되는 부칙이 있다. 통과될 경우 이 위원장 임기는 자동 종료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한 공공기관의 감사는 “어떻게든 내쫓으려는 것 아니겠냐”고 푸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왼쪽)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전현희 최고위원. 임현동 기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왼쪽)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전현희 최고위원. 임현동 기자

언론 인터뷰를 통한 공개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는 강제적으로, 불법적 방법으로 쫓아내진 않는다. 본인이 이 정부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다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전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 당시 감사원의 감사를 표적 감사라고 반발하며 임기 3년을 모두 채웠다. 전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처음엔 자진 사퇴를 고려했지만, 강제로 쫓아내려 했기 때문에 모진 탄압을 받으며 자리를 지켰다. 그 문제랑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현 민주당 의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진숙 위원장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한 경찰 수사와 관련해 “11개월째 수사가 진행 중인데 아직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압박이 거센 이유로 “정권 초 챙겨줄 사람은 많은 데 자리는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말부터 나온다. 지난 10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 공시를 바탕으로 331개 공공기관 임원 임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19개 기관의 기관장만 공석이었다. 221명(70.8%)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이들 중 130명(41.7%)은 잔여 임기가 2년 이상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임명된 인사도 56명이었다.


민주당은 알박기라 비판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신 인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도 수십 명의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가 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기를 마쳤다는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과 유철환 권익위원장,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등 임기가 명시된 중앙행정기관 소속 국가기관장 모두가 임기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라 향후 충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