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SPC공장 등 12곳 압수수색…노동자 끼임 사망 본격 수사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SPC삼립 시화공장과 서울 SPC 본사 등 12곳을 17일 압수수색했다.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지난달 19일 오전 3시쯤 50대 여성 노동자가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상반신이 끼어 사망했다. 손성배 기자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지난달 19일 오전 3시쯤 50대 여성 노동자가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상반신이 끼어 사망했다. 손성배 기자

시흥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이날 오전 9시부터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SPC삼립 시화공장과 서울 서초구 본사 건물에서 관련 서류 등을 확보했다. 수사관과 근로감독관 등 80여 명을 투입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화공장의 안전과 보건, 설비 관리 등이 주요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임직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임직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가 발생 29일만에 이뤄진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 13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가능하게 됐다. 앞서 법원은 세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지난달 19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는 50대 여성 직원이 갓 구운 빵을 식히는 냉각 컨베이어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노동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경찰 조사에서 당시 노후화된 기계 안쪽으로 직접 몸을 넣어 윤활유를 뿌려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옴에 따라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윤활유에 대한 성분 분석도 진행했다.  

경기도 시흥시의 SPC삼립 시화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지난달19일 오전 3시쯤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56세 여성 근로자가 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시흥소방서

경기도 시흥시의 SPC삼립 시화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지난달19일 오전 3시쯤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56세 여성 근로자가 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시흥소방서

이후 경찰은 공장장 등 관계자 7명이 사망사고 당시 현장 관리감독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경찰은 또 공장 관계자들이 노후 설비를 멈추지 않은 채 작업한 이유와 사람이 직접 기계 안에 들어가 작업하는 방식이 맞았는지, 2인 1조 등 근무규칙은 없었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노동부는 김범수 대표이사와 법인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험의로 입건한 상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근로자 사망을 비롯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최고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중처법 시행 이후 3번째 사망사고 
이번 사고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SPC에서 벌어진 세 번째 사망사고다. 부상까지 포함하면 8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SPC는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관리를 강화한다고 밝혔으나, 과자 제조 업계 중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되풀이 되고 있는 건 SPC그룹이 유일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제조업 사고사망자 중 끼임으로 인한 사망자가 126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법 집행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성희 교수(L-ESG평가연구원 원장)는 “국내서 한해 약 6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실형을 받은 건 지금까지 4명 뿐이니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이었으면 사고와 동시에 공장이 멈췄을 텐데 우리나라는 이번 사고 이후 압수수색 영장이 세 번이나 기각됐다. 반복적으로 산재사고를 낸 곳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개념이 생기려면 사법부가 입법 취지에 맞게 제대로 법 집행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SPC 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난 게 벌써 세 번째다. 수사는 구멍투성이고 법 집행은 솜방망이니까 말로는 10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해도 현장 안정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SPC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지난달 19일 사과문을 내고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관계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며,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고 직후 공장 가동을 즉각 중단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직원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늘 이뤄진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는 “수사 과정의 일환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 2024년 말 기준으로 31건에 대한 법원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중 유죄는 29건인데 그중 실형은 4건이고, 징역형 집행유예는 24건, 벌금형은 2건이었다. 31건의 판결이 나온 사건 중 건설업이 16건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고, 제조업(12건)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