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러시아 찾은 이란 외무장관…머뭇거리는 푸틴, 이유는

미국의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란 핵시설 세 곳을 정밀 타격한 직후, 이란 외무장관이 급히 러시아로 향했다. 23일(현지시간) 아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 간 회동이 예정된 가운데, 러시아가 실제로 ‘전략적 파트너’ 이란을 도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22년 7월 19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오른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테헤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뉴스1

지난 2022년 7월 19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오른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테헤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뉴스1

아락치 장관은 전날 러시아를 “이란의 친구”라고 부르며 러시아 방문 계획을 밝혔다. 현지 관영 누르통신은 “아락치 장관이 23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영토 공습 등 의제에 대해 러시아 지도자 및 고위 관계자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크렘림궁 외교담당 보좌관도 이날 회동 예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렇다”고 답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지난 1월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다. 다만 러시아는 군사 협력과 과련한 조항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 5일째 되던 지난 18일 ‘이란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에 “협정에는 군사 협력이 포함돼 있지 않다. 이란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재확인했다.  

실제 이란도 이스라엘과의 교전 10일 동안 러시아에 ‘군사 개입’을 정식 요청하지 않았다. 이란과 중동 정책을 연구해 온 국제문제 전문가 니키타 스마긴은 유로뉴스에서 “이란은 외세 개입을 거부하는 국가 정체성을 갖고 있다. 군사 지원 요청 자체가 주권 침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러시아 역시 이란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J.D. 밴스 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란을 겨냥한 미군의 공습을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J.D. 밴스 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란을 겨냥한 미군의 공습을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미국의 참전을 두고 러시아는 ‘말뿐인 대응’을 이어왔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군사 개입을 규탄하면서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약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실질적인 조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신중한 반응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4년째에 접어든 상황에서 제한된 자원과 상충하는 지정학적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의 중동 경쟁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과의 균형외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체제 내 유가 조율에서도 필수적이다. 현재 이란 의회는 반격으로 주요 교역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한 상황이다. 

중동 불안정으로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러시아 예산엔 호재기도 하다. 당초 지난주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현재 배럴당 60달러(약 8만2314원)에서 45달러(약 6만1736원)로 낮추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와 시장 혼란 이유로 당분간 유지키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도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그간 중재국인 미국이 힘써온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부진해지자 “푸틴이 중동 위기를 외교적 카드로 활용해 트럼프에게 정치적 ‘빚’을 지우려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군사 기술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이미 독립적 체계를 갖춘 상태라 이란의 군사적 협력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이란의 무인기(드론) 샤헤드-136의 러시아 버전인 ‘게란’ 시리즈는 사실상 러시아에서 대부분 생산된다. “이란 기술 의존도는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러시아의 전략 및 기술 분석 센터 소장인 루슬란 푸코프는 “이란산 드론은 ‘모터 소리로 동네가 다 알 정도’로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라고도 했다.  

다만 러시아에서는 ‘이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평화중재자를 자처했던 트럼프가 미국을 또 다른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러시아 재벌 콘스탄틴 말로페예프도 “위성 정보, 방공, 미사일 분야에서 테헤란을 지원해야 할 때”라는 글을 텔레그램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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