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자전거 경음기 [병무청 제공]](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19/db79f435-c9d9-4611-8009-9be1c16e9ea5.jpg)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자전거 경음기 [병무청 제공]
2011년 입대를 앞둔 이모(32)씨는 군대에 안 갈 수 있는 ‘비법’을 찾아냈다.
비법은 간단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경음기(클랙슨ㆍ일명 빵빵이)를 갖고 놀길 좋아했다. 경음기를 귀에 갖다 대고 울리면 먹먹해지고 일시적으로 안 들린다는 걸 알게 됐다. 이씨는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댄 뒤 그 안에서 경음기를 양쪽 귀에다 20분 간격으로 두 번 정도 울렸다. 그랬더니 일시적으로 청각이 마비됐다. 병원에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서를 받아 청각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물론 나중엔 청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무청의 신체등급 기준에 따르면 두 귀의 청력을 각각 70㏈ 이상 잃은 사람은 6급에 해당해 병역판정검사(신체검사) 없이 면제판정을 받는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정도다.
자신이 직접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이씨는 이 비법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군대에 가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게는 12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받은 뒤 비법을 전수했다. 이씨는 이들에게 차 안에서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에어 혼(나팔)을 울리면 청각장애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도구들도 직접 건네줬다. 이렇게 해서 이씨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억300만원을 벌어들였다.
이씨에게서 비법을 산 사람들 중에는 전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A(31)씨와 인기 유튜버(유튜브에 정기적으로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 김모(25)씨가 있다. 김씨는 게임 동영상이 전문이며, 그의 채널 구독자 수가 100만명이 넘는다.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에어혼 [병무청 제공]](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19/71062f4e-fad1-4002-90b7-9cc97ce5f559.jpg)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에어혼 [병무청 제공]
이씨와 인터넷 수입차 동호회에서 만난 A씨는 2015년 1500만원으로 이씨의 비법을 산 뒤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반면 김씨는 5000만원을 주고 이씨가 알려준 대로 시도했지만, 청각이 일시적으로 악화하지 않아 청각장애인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입대를 한 김씨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진단서를 꾸며 귀가조치를 받았다. 김씨는 이후 병역을 피하려고 시도하던 중 적발됐다.
A씨와 김씨는 “선수 생활이나 방송을 계속해 돈을 벌기 위해 이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자신의 지인들에겐 무료로 비법을 알려줬다.
이 같은 범죄는 2017년 12월 국민신문고의 제보 덕분에 세상에 드러났다. 청각장애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 청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병무청은 이씨 등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면제를 시도한 8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이씨에게 병역면제 희망자를 소개한 이씨의 동생과 선배 등 3명을 적발했다. 이씨 자신을 포함해 모두 6명은 실제 군대에 안 가게 됐고, 2명은 병역면탈을 시도한 혐의다.
병무청은 이번 병역면탈을 일시적 청각 마비를 이용해 병역을 회피하는 신종수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2012년 이후 브로커가 개입한 첫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씨 등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병무청은 이들에 대한 병역처분 자체를 취소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씨 등은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그에 따라 입대 여부가 결정된다. 또 보건복지부에 이씨 등의 허위 청각장애 등록 사실을 통보했다.
병무청은 또 2011년부터 청각장애를 이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1500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의 과거력과 보청기 착용 여부를 확인해 병역면탈 사례를 추가로 적발하기 위해서다.
이철재 ·이근평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