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은 "탄도 미사일" 한·중은 "결론 이르다"

9일 북한이 평북 구성에서 쏜 단거리탄도미사일. [사진 조선중앙통신]

9일 북한이 평북 구성에서 쏜 단거리탄도미사일.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9일 동해로 쐈다는 발사체 2발의 모습이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지켜봤다는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 보도사진에서다. 그러나 이 발사체의 정체에 대해선 한ㆍ미가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군 관계자는 10일 “(9일 발사체는) 현재까지 단거리 미사일로 평가하고 있다”며 “이는 한ㆍ미 공동평가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국방부 대변인인 데이비드 이스트번 중령은 중앙일보에 “(한국시간으로 9일) 북한이 북서부 지역에서 복수의 탄도 미사일(multiple ballistic missiles)을 발사했다. 미사일들은 발사 지점에서 동쪽으로 300㎞를 넘게 비행한 뒤 바다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일본의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도 “(북한이 쏜 것은)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보인다”며 미국 편을 들었다.

평북 구성 일대 지도. 위에서부터 화성 12형 발사 장소, 지난 9일 단거리미사일 발사 장소, 북극성 2형 발사 장소. 파란색으로 칠한 부분이 95호 공장이다.  [자료 조지프 뎀프시 트위터]

평북 구성 일대 지도. 위에서부터 화성 12형 발사 장소, 지난 9일 단거리미사일 발사 장소, 북극성 2형 발사 장소. 파란색으로 칠한 부분이 95호 공장이다. [자료 조지프 뎀프시 트위터]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구체적인 종류와 제원은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도 “미 국방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합참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도 “한ㆍ미 정보 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라 (탄도미사일이라고) 결론내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한국과 입장이 유사한 건 중국이다. 중국도 탄도 미사일로 부르기를 거부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보도를 주의한다”며 “북한 발사물의 종류와 성질에 관해 현재 중국은 구체적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사물(발사체)로 지칭하는 데 그쳤다. 겅 대변인은 “방금 (질문에서) 탄도 미사일이라고 언급했지만 중국은 현재 구체적 정보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4일과 9일 닷새 간격으로 쏜 발사체를 단거리 미사일이냐, 탄도 미사일이냐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단거리 미사일 또는 탄도 미사일로 분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장난에 가깝다"며 "정부가 자꾸 북한을 의식해 도발을 저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사일은 거리를 기준으로 단거리·중거리·장거리로 나뉜다. 탄도 미사일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뒤 떨어지는 미사일이다. 그렇지 않고 저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해 목표물을 향하면 순항 미사일이다. 탄도 미사일 가운데 최대 사거리가 1000㎞에 못 미치면 단거리탄도미사일이다.

지난 2002년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됐던 국내 쌀. [중앙포토]

지난 2002년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됐던 국내 쌀. [중앙포토]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군 당국이 ‘단거리 미사일’로 일단 명명하는 이유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확정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 되는 상황을 의식한 때문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결의 1718호, 2009년 결의 1874호, 2017년 결의 2397호 등을 통해 탄도 미사일의 발사는 물론 모든 관련 활동의 중단을 북한에 요구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가 최근 미국으로부터 북한 식량지원에 대한 양해를 받았는데, 북한의 유엔 결의 위반으로 드러나면 국내외 여론이 나빠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 탄도 미사일인지, 순항 미사일인지 묻자 “지금은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것만 얘기할 수 있다”며 얼버무렸다.

4일 발사체와 9일 발사체 사진을 겹쳐보면 겉모습의 차이가 거의 없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 노동신문)

4일 발사체와 9일 발사체 사진을 겹쳐보면 겉모습의 차이가 거의 없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 노동신문)

 
군 당국은 지난 4일 북한이 쏜 것에 대해선 '발사체'라고 했고, 9일 발사한 것을 놓곤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했다. 만약 4일 쏜 것과 9일 쏜 게 동일하다면 군 당국은 같은 것을 놓고 다른 얘기를 한 게 된다. 군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 매체가 10일 공개한 사진 중 일부엔 미사일로 보이는 발사체가 이동식미사일발사대(TEL)에서 수직으로 치솟는 장면이 담겨 있다. 겉으로 봐서는 지난 4일 북한이 원산 호도반도에서 쏜 전술유도무기와 매우 비슷하다. 4일 TEL에는 바퀴가 달린 데 비해 9일 TEL은 전차와 같이 궤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게 차이점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4일과 9일의 북한의 발사체가 외형이 러시아제 단거리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와 비슷하다며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보고 있다. 

신범철 센터장은 “정부는 당초엔 ‘발사체’라고 했다가 9일에서야 ‘단거리 미사일’로 평가하면서 북한 입장을 배려하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정작 북한이 훈련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베이징=정효식·신경진 특파원,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