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볼턴 떠나도···그가 만든 50억 달러 방위비 청구서는 그대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0일(현지시간) 경질되면서 북핵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등 한국과 관련한 외교사안에도 여파가 미칠지 주목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연합뉴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연합뉴스]

볼턴 전 보좌관은 대표적인 대북 매파였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등 공화당 행정부에서 꾸준히 중용된 ‘지략적 강경파’로, 직접 북한 문제를 다룬 경험이 있다. 그가 북한을 불신하는 이유다. 유엔 주재 대사로 일하면서 2006년 10월 대북 제재의 효시 격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채택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북 공격, 리비아 모델…북한 숙적

정부를 떠나 있을 때는 거침없이 대북 선제공격 필요성을 주장했고,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한 뒤에도 북한이 극렬히 반발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추진했다. 일단 북한을 무장해제부터 시키자는 선(先) 비핵화-후(後) 보상이 리비아식 모델의 골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피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이로 인해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그는 북한을 절대 악에 가까운 존재로 본다.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게 갖고 있는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강경한 태도로 북핵 협상서 배제

이런 강경한 접근법 때문에 그는 북한과의 협상 문제에서는 일찌감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 때도 배석하지 못하고 몽골 출장을 갔다. 이처럼 애초에 그의 발언권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핵 협상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볼턴 전 보좌관.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볼턴 전 보좌관. [연합뉴스]

하지만 비확산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볼턴 전 보좌관은 북한의 협상 전술을 간파하는 데 능했다는 점에선 평가를 받는다. 의견 차이가 있는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발신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김 없이 그를 내세웠다.


“북 ‘노마크 득점 찬스’로 볼 것”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실무협상 개시를 앞둔 시점에 북한을 잘 아는 볼턴 보좌관이 경질됐으니 북한이 ‘노마크 득점 찬스’로 인식,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시도들을 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기만술 등을 통해 밀고 당기기를 하며 공수전환을 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위비 문제와 관련, 지난 7월 방한해 50억 달러 청구서를 내민 인사가 볼턴이었다. 청구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도 그라고 한다. 원래 방위비 협상은 국무부 소관인데, 볼턴의 주도로 이번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방위비 문제에 주력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  

50억 달러 청구서 만든 장본인

하지만 볼턴이 퇴장해도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의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 선거 유세에서도 “많은 경우에 이 나라(미국)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은 우리의 동맹”이라고 말했다. 방위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동맹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또 표출했다.  

지난 협상을 이끈 장원삼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 티모시 베츠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 [뉴스1]

지난 협상을 이끈 장원삼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 티모시 베츠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 [뉴스1]

볼턴 전 보좌관의 후임으로는 폭스뉴스 터커 칼슨 쇼의 안보 분야 해설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 전 육군 대령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대통령 인질 특사, 브라이언 훅 이란특별대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이름도 나온다. 다만 북한과의 실무협상 개시를 앞둔 만큼 협상을 이끌 비건 대표를 교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판문점 북ㆍ미 회동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협상과 관련해 비건 대표에게 사실상 전적인 재량권을 주고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