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만난 아인혼 “한·일관계, 빛이 안 보인다"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하고 있다. 당시 그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포함한 비핵화 조치를 북한이 내놓는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는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하고 있다. 당시 그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포함한 비핵화 조치를 북한이 내놓는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는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조정관은 19일 한ㆍ일 군사정보보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no daylight)”고 우려했다. 방한 중 한미클럽(회장 이강덕)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아인혼 전 조정관의 발언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 외교부 이태호 제2차관 등과 만난 뒤 나왔다. 아인혼은 “(한ㆍ일) 관계에 대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가진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외교적 표현의 행간에선 한ㆍ일 관계 악화에 대한 강한 우려가 읽힌다. 한미클럽은 전ㆍ현직 워싱턴 특파원들의 모임이다.  
 
김현종 2차장이 지소미아 종료가 한ㆍ미 동맹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아인혼은 “지소미아 종료는 한ㆍ미ㆍ일 3각 협력에 장애가 되며, 북한과 중국에 (한ㆍ미ㆍ일) 동맹이 혼란에 빠졌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한ㆍ미 양국 동맹을 넘어 한ㆍ미ㆍ일 3각 협력에 지소미아 종료가 악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인혼은 이어 “실제 종료 시한인 11월22일까지 한국 정부가 결정을 되돌리길 바란다”며 “내 느낌엔 서울에서도 지소미아 종료가 벌집을 건드렸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핵심 관계자들을 만난 직후의 발언이라 주목된다. 정부 관계자들도 지소미아 종료의 부정적 함의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아인혼은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제3자(미국)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순 있겠지만 문제의 근원이 이렇게까지 깊고 감정적이라면 직접 해결을 해줄 순 없다”고 말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ㆍ미 실무협상 움직임과 관련, 아인혼 전 조정관은 “아직 시간과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협상 장소 후보로 스웨덴(스톡홀름)ㆍ오스트리아(비엔나)ㆍ스위스(제네바) 등을 언급했다. 아인혼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도 가깝다. 비건 대표가 최근 국무부의 2인자 자리인 부장관으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 아인혼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부장관으로서도 대북 협상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친서를 보냈다는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 아인혼은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초대하고 싶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응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확실한 성과가 없는 회담을 위해 평양까지 간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면을 지나치게 세워주는 셈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빈틈없는 대북 제재로 한때 ‘대북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아인혼 전 조정관은 이날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 및 도로 협력과 같은 일부의 남북 경제협력 관련 제재는 풀어줄 수 있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다. 다만 아인혼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되, 시한은 정하지 않은 중간 합의(interim agreement)에 북한이 사인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야 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아인혼 대북제재 조정관이 2012년 외교부를 방문해 김재신 당시 차관보와 회담한 뒤 기자들에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중앙포토]

로버트 아인혼 대북제재 조정관이 2012년 외교부를 방문해 김재신 당시 차관보와 회담한 뒤 기자들에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중앙포토]

 
아인혼은 이어 “영변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핵물질 생산 시설을 범위에 넣는 완전한 비핵화와 그 최종상태(end state)의 정의를 함께 내리되, 그 데드라인은 설정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며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진보 정부는 ‘(북한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실용적(pragmatic)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인혼은 이 같은 구상을 김현종 차장에게도 설명했다고 한다. 김 차장의 반응을 묻자 아인혼은 “내 제안을 (김 차장도) 이해(understand)한 것 같고, 수용할 수 있다 생각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아인혼이 만난 핵심 인사 중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있다. 아인혼은 "비건 대표와 이도훈 본부장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며 "(방미 중인) 이도훈 본부장이 비건 대표와 만나 다양한 시각을 전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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