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에 드리운 여성 차별의 그림자

정치적인 식탁

정치적인 식탁

정치적인 식탁
이라영 지음
동녁

지친 현대인들은 음식을 보고, 먹는 것으로 힐링하고 있다.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이 넘쳐난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비주얼이 화려한 음식 사진을 자랑하기 바쁘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서 지인들과 새로운 맛집을 공유하는 게 낙이다. 그런데 힐링 가득한 음식을 먹는 행위에 반페미니즘적 요소가 가득할 줄이야.

저자는 아주 평범한 먹는 일상에 스며든 차별을 나열하고, 음식에 투영된 여성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낱낱이 해부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등장인물을 통해 여성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 꼬집었다면, 이 책은 에세이답게 저자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날카롭고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은 아니다. 모든 예술을 사랑한다는 저자는 당대 시대상이 담겨있는 드라마·예능·영화·소설·그림 등을 예시로 들며 쉽고 재미있게 풀어준다. 식견 있고, 말솜씨 있는 동네 언니 혹은 누나가 가볍게 맥주 한잔하면서 신랄함과 유쾌함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 같다.

이를테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 고라이틀리가 ‘원조 된장녀’라고 한다.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값비싼 보석이 진열된 티파니 매장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거기에 뼈가 있는 농담도 곁들인다. "유난히 발효식품을 한국 음식의 특징으로 꼽는데, 어느덧 여성들도 ‘김치녀’ ‘된장녀’ 등 발효식품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남성도 읽어볼 만하다. 고추·오이·초콜릿 등 먹거리에 비유되는 남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서술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