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엔 소금물 흐른다"…국대 7명 키운 '서핑 대모' 서미희

 

송정해수욕장 모래에 누운 서핑가족, 엄마 서미희 씨는 송정 서핑학교 대표이며, 서핑 선수인 딸 이나라, 아들 이도운은 엄마 뱃속에서 부터 윈드서핑과 서핑을 한 '모태 서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정해수욕장 모래에 누운 서핑가족, 엄마 서미희 씨는 송정 서핑학교 대표이며, 서핑 선수인 딸 이나라, 아들 이도운은 엄마 뱃속에서 부터 윈드서핑과 서핑을 한 '모태 서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가장 뜨는 '대세' 스포츠는 누가 뭐래도 '서핑'이다.
대한서핑협회에 따르면 서핑 인구는 2014년 4만 명 정도에서 2015년 5만5000명, 2016년 10만 명, 2017년 20만 명, 현재까지 약 45만명에 달한다. 무서운 성장세다. 서핑 관련 업체도 2014년 50개에서 올해 250개로 5배 증가했다. 

그렇다면 서핑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건 언제였을까? 
서핑이 뜬 건 몇 년 전이지만, 첫 시작은 무려 24년 전인 1995년 부산 송정해수욕장의 '송정 서핑학교'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서핑의 불모지 한국에 서핑을 정착시킨 이는 바로 '서핑의 대모'로 통하는 서미희(53) 송정 서핑학교 대표다. 서 대표의 딸과 아들도 모두 서퍼다. 해외로 훈련하러 다니는 자녀들이 국내 대회 출전을 위해 오랜만에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산 송정으로 내려가 '서퍼 가족'을 만났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이 모처럼 귀국하여 송정 바다를 배경으로 섰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이 모처럼 귀국하여 송정 바다를 배경으로 섰다.

 
엄마 서미희 씨는 송정 서핑학교의 대표,
딸 이나라(22) 양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서핑 국가대표,
아들 이도운(19) 군은 2017년에 서핑 국가대표였다.
서 대표는 딸과 아들을 임신했을 때도 윈드서핑과 서핑을 했다.
한 마디로 두 자녀는 '모태 서퍼'라 할 만하다.

 "언젠가 제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자기 핏속에 소금물이 흐른다고요”  
이 말을 듣고 그에게 되물었다.


 “본인의 핏속에도 소금물이 흐르지 않습니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하하”

송정해수욕장을 서핑의 메카로 만들어낸 서 대표를 두고 서퍼들은 '서퍼의 대모'라 일컫는다.

송정해수욕장을 서핑의 메카로 만들어낸 서 대표를 두고 서퍼들은 '서퍼의 대모'라 일컫는다.

 
사실 우리나라 서핑은 서미희 대표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핑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핑 학교를 열었으며,
그의 딸과 아들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 명의 국가대표 서퍼를 길러냈다.
이를테면 그는 ‘핏속에 소금물이 흐르는 서핑 유전자’의 시조인 셈이다.

 

끊임없는 파도와 얕은 수심 덕에 송정해수욕장은 '서퍼들의 천국'이 되었다.

끊임없는 파도와 얕은 수심 덕에 송정해수욕장은 '서퍼들의 천국'이 되었다.

 
'서퍼 가족'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부산 송정해수욕장.
철 지난 바다라 생각했건만 물속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서퍼였다.
서프보드에 몸을 실은 채 파도와 노닐고 있었다.

9월의 바다와 서퍼,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놀라운 풍경이었다.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며 바다를 되돌아 보는 서 대표. 그의 눈은 항상 바다를 향하고 있다.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며 바다를 되돌아 보는 서 대표. 그의 눈은 항상 바다를 향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 낯선 광경,
모두 서 대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서퍼들이 그를 ‘서핑의 대모’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파도는 일자로 쭉 오는 게 아니고 산처럼 밀려온다. 그 파도의 꼭대기를 타야 쉽게 서핑할 수 있다. 그가 비디오를 구해보고, 몸으로 터득하며 시작한 서핑이다.

파도는 일자로 쭉 오는 게 아니고 산처럼 밀려온다. 그 파도의 꼭대기를 타야 쉽게 서핑할 수 있다. 그가 비디오를 구해보고, 몸으로 터득하며 시작한 서핑이다.

 

“서핑은 언제 시작한 겁니까?”
“윈드서핑이 먼저였습니다.  
1988년 부산 달맞이 고개에서 윈드서핑을 처음 봤습니다.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바다에 입문한 겁니다.
그러다 결혼 후 1995년에 윈드서핑 교육을 위해 이곳 송정에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기에는 고가인 데다,  
파도가 너무 잦아서 윈드서핑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파도가 원수였습니다.
좌절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바다에서 홀로 서핑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마치 바다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외국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바다 수심이 깊지 않은 데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기에  
서핑교육에 있어 최적의 장소’라고 했습니다.
프로가 타기엔 작은 파도이지만 초·중급자가 타기에는 천국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윈드서핑엔 원수인 파도가 서핑엔 최적이라니 딱 와 닿았습니다.
그때부터 서핑을 시작한 겁니다.”

 

 원수 같았던 파도가 그의 새 삶을 열어주었다.

원수 같았던 파도가 그의 새 삶을 열어주었다.

 

“윈드서핑 여자부 최고였는데도 새로운 길로 들어선 겁니까?”
“많은 사람이 저더러 미쳤다고 했죠.
그 멋진 윈드서핑 대신,
날마다 콧물 질질 흘리면서,  
모래 한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서 오니 바보라고 했습니다.
외국의 엄청난 파도에서 서핑해야지
이런 조그만 파도에서 무슨 서핑이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하”

“당시 서핑을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면서요”
”맞습니다. 그러니 거의 독학했습니다.  
외국에서 비디오를 구해보고,
외국인들에게 물으며 혼자 한 터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보드는 심지어 외국 공장에 직접 가서 한 번에 네댓 개씩 사 왔습니다.
그것으로 연습하고, 애들 가르치고 했습니다.”

 

네살 도운과 일곱살 나라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는 서 대표. /사진 서미희 제공

네살 도운과 일곱살 나라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는 서 대표. /사진 서미희 제공

 

“딸과 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도 서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윈드 서핑할 땐 딸을 임신했었고,
서핑할 땐 아들을 임신했습니다.  
사실 패들(팔 젖기) 할 땐 배를 보드에 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엔 배를 누르지 않기 위해, 
무릎을 꿇은 채 패들 하다가 
파도가 오면 테이크오프(일어서기)해서 서핑했습니다.”

서 대표는 무용담처럼 싱글벙글하며 설명했다.
서핑에 문외한인 기자가 이해를 못 하자 직접 동작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서 대표는 아이들이 걷기 시작할 때부터 서핑을 가르쳤다고 했다. 송정 바다가 아이들에게 놀이터였던 게다.

서 대표는 아이들이 걷기 시작할 때부터 서핑을 가르쳤다고 했다. 송정 바다가 아이들에게 놀이터였던 게다.

 

“딸 아이 임신 땐 조난된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면서요”
“당시 임신 8개월 때였습니다.
윈드서핑 하는 사람이 파도에 밀려 조난된 겁니다.
제가 카약을 끌고 가서 그 사람과 바꿔 탔습니다.
카약은 노만 저으면 육지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제가 요트에 올라타 돛을 세워야 했습니다.
사력을 다해 돛을 세우는데,
임신한 한쪽 배엔 아기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고,
또 반대편 배엔 다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겁니다.
제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야 괜찮다, 괜찮다’며 다독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진정이 되었습니다. 하하”

서 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더 와 닿았다.
그의 딸과 아들이 왜 ‘모태 서퍼’이며 핏 속에 소금물이 흐르는지….

 

“이런 애들에게 송정을 떠나라고 떠밀었다면서요”
“어느 순간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자기들보다 잘 타는 사람이 없으니까 애들이 시건방지게 되더라고요.
대회만 나가면 1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물 안 개구리’지 않습니까.
한국에 더 있다가는 애들 바보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국내 챔피언을 했으니 애들 만큼은 세계 챔피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떠민 겁니다.”  

 

발리에서 서핑 하고 있는 이나라 선수. [사진 서미희]

발리에서 서핑 하고 있는 이나라 선수. [사진 서미희]

발리에서 서핑 하고 있는 이도운 선수. [사진 서미희]

발리에서 서핑 하고 있는 이도운 선수. [사진 서미희]

 
그렇게 한국을 떠난 그의 딸과 아들은 2012부터 본격적으로 발리에서 공부하며 서핑을 해왔다. 

 

몸살이 나도 집보다 바닷속이 편하다는 이나라 선수, 자신의 핏속에 소금물이 흐른다고 했다.

몸살이 나도 집보다 바닷속이 편하다는 이나라 선수, 자신의 핏속에 소금물이 흐른다고 했다.

 
이나라 선수에게 물었다.

“서핑이 2020년 도쿄,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던데요.  
현재 우리나라 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솔직히 수준 차이가 꽤 있습니다.  
서핑 역사가 150년 차이이니 하루아침에 따라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호주는 매일매일 엄청난 파도가 칩니다만 
우리나라는 늘 작은 파도뿐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연습한 친구들과는 차이가 납니다.  
현실적으로 올림픽은 좀 힘듭니다.
하지만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메달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핑을 마치고 바다에서 나오는 이나라 선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서핑을 마치고 바다에서 나오는 이나라 선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대표팀 지원은 원활한가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아직 서핑협회가 대한체육회 소속이 아닙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는데도 대한체육회가 서핑을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만 해도 인공 파도 풀을 만들고,  
해외 코치를 데려와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저희를 가르쳐 줄 코치도 없습니다.  
저희가 처음이기 때문에 더 배울 데가 없는 거죠.”

 
이나라 선수 머리카락은 노란색이다. 
당연히 염색한 거라 생각을 했는데  
바닷물에 탈색이 되어 노랗게 변한 것이라고 했다.

물에서 나와 젖었지만 바람에 날리는 이나라 선수의 머리카락이 노랗다.

물에서 나와 젖었지만 바람에 날리는 이나라 선수의 머리카락이 노랗다.

 
“학교 다닐 때, 머리가 노란색이니 염색했다고 혼날 정도였어요.
요즘 가끔 검은색으로 염색합니다.  
색이 너무 밝으면 양아치로 인식될까 봐서요.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다시 노란색이 됩니다. 하하”

거의 물속에서 산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이 선수는 몸살이 나도 바닷속에 들어간다고 했다.
집에 누워 있는 것보다 바닷물에 들어가 있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이도운 선수는 이른 나이에 입대 준비 중이다. 제대후 서핑에 집중하기 위해서 입대한다고 했다. 파도를 기다리 듯, 그렇게 훗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도운 선수는 이른 나이에 입대 준비 중이다. 제대후 서핑에 집중하기 위해서 입대한다고 했다. 파도를 기다리 듯, 그렇게 훗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늘 바닷물에서 사는 건 이도운 선수도 마찬가지다.
10월에 입대가 결정되기를 기다리면서도 늘 바다와 함께였다.

 

서핑을 마치고 바다에서 나오는 이도운 선수, 힘들텐데도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서핑을 마치고 바다에서 나오는 이도운 선수, 힘들텐데도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군에 가기에 이른 나이가 아닌가요?”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빨리 갔다 오는 게 낫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요.
서핑 훈련에도 좀 더 집중할 계획입니다.”

 

같은 파도를 탄 이나라, 이도운 선수.

같은 파도를 탄 이나라, 이도운 선수.

 
서핑에 더 집중하려고 입대를 서두르는 아들,
몸살이 나도 집보다 바닷속이 편하다는 딸,
과연 ‘모태 서퍼’였다.

 
다시 서 대표에게 물었다.

“서프 레스큐(Surf Rescue) 회장이시라면서요.”
“하하! 정식단체는 아닙니다.
보드를 이용해서 사람을 구조 하는 게 서프 레스큐입니다.  
송정엔 파도가 심하기 때문에 제트스키나 큰 배가 쉽사리 못 들어옵니다.  
여차하면 사람 하나 살리려다 여러 사람 다치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보드는 파도를 쉽게 넘어갈 수가 있어요.
빠르고 신속하게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보드를 타고 파도를 넘어 먼바다로 나가는 서미희 대표.

보드를 타고 파도를 넘어 먼바다로 나가는 서미희 대표.

 

“그래서 119대원들에게도 서프 레스큐 교육을 하는 겁니까?”
“1년에 몇 번씩 119 수상 구조대 교육을 합니다.  
가까운 바다에서 사람 구조하는 데는 서프 레스큐만한 게 없으니까요.”

 

“보육원 어린이들 교육도 하신다면서요”
 이 물음에 딸이 엄마의 답을 가로막았다.
“엄마!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요. 그냥 조용히 우리끼리 해야 할 일인데….”

“이미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좋은 일은 널리 알려야 확산이 되지 않습니까?”

 

가족은 이따금 보육원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놀기도 한다. 서핑뿐만아니라 세상을 향한 봉사도 함께다.

가족은 이따금 보육원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놀기도 한다. 서핑뿐만아니라 세상을 향한 봉사도 함께다.

 
딸의 눈치를 살피던 서 대표가 한참 망설이더니 답을 했다.
“제가 보드를 갖고 있죠.  
제가 코치 하면 되죠.  
또 제가 요트도 갖고 있죠.  
게다가 바다는 공짜죠.  
돈 하나 안들이고 애들을 놀게 해 줄 수 있잖아요.  
애들이 가장 잘 놀 수 있는 날짜를 정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여건을 활용하는 일이니 별거 아닙니다.  
사실 지난주에도 나라와 도운이가 애들에게 요트를 태워줬습니다.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안 내리려고 할 정도였어요.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다른 보육원에도 이런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서핑 하고 나오며 바닷가에서 유리조각, 쇠붙이를 한 움큼 주운 서대표, 그의 눈은 바다와 사람을 향해 있다.

서핑 하고 나오며 바닷가에서 유리조각, 쇠붙이를 한 움큼 주운 서대표, 그의 눈은 바다와 사람을 향해 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우리나라엔 아직 서퍼의 안전을 지키는 시스템이 없어요.
오롯이 수영객을 위한 안전 시스템만 갖춰져 있습니다.  
위험이란 게 어디든지 있지 않습니까?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사람과 보드를 연결하는 리쉬가 끊어져서 파도에 떠밀려 가기도 하고요.  
서핑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것을 지켜 주는 시스템이 없어요.
이 시스템은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찾는 송정해수욕장에  
구조 시스템, 전문 구조사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저희야 민간 봉사단체일 뿐이고요.  
국가 시스템과 우리 봉사단체가 협력하여야 모두 안전하게 서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의 눈은 늘 바다를 향해있다.
바다를 살피고,
파도를 살피며,
바다에 든 사람을 살핀다.

서미희 대표만 이런 게 아니다.
온 가족이 그렇다.
이는 그들의 핏속에 소금물이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글=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