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

지난 7월 26일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비행하는 모습.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곤경에 처하게 됐다. 하나는 김정은 지도력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쉽게 생각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이 벽에 부딪히게 됐다는 점이다.
먼저 북한은 김정은 정권의 지도력이 훼손되었다는 소문을 불식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비공식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태세를 견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체면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불편한 심기 표출은 단순히 대미 ‘비난 전’에 머물지만 않았다. 그들은 중단해 왔던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함으로써 미국의 트럼프 정부를 물리적으로 직접 압박하는 강경 태도를 재차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4일 북한은 1년 5개월 만에 북한 지역 강원도 원산에서 단거리 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다. 5월 9일에도 평안북도 구성에서 두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쏘았다. 그로부터 약 두 달 후인 7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 2발, 1발을 각각 쏘아 올렸다. 8월에는 무려 5차례, 9월에는 1차례의 방사포 또는 미사일 시험발사가 이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판문점에서 회동했다. [노동신문=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0/26/f3a66d69-13f5-4c97-9047-c4af59110fd2.jpg)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판문점에서 회동했다. [노동신문=뉴시스]
이 같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는 데 일차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해 버렸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다소 머쓱해진 꼴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2일에는 SLBM 1발을 발사하여 미국을 더욱 자극하는 강경책을 구사했다. SLBM은 단거리 미사일과는 달리 미국의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그것이 주효했음인지 북한은 결국 미국과 스톡홀름 실무협상(10월 5일)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큰 변화를 찾을 수 없는 미국의 태도를 간파하고 미국이 아닌 그들이 앞장서 그 실무협상을 결렬시켜 버렸다. 이로써 북한 당국이 하노이 정상회담의 ‘굴욕’을 만회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바는 미국의 근본적인 변화가 담긴 협상 태도를끌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6시30분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혔다. [공동취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0/26/51932394-cb28-4774-b797-d0f1bfd87b42.jpg)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6시30분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혔다. [공동취재단]
북한은 미국이 먼저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실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협상에 임하라는 것이다.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지난 6일 북한 외무성이 밝힌 담화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향후 북한은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자 할 것이다. 이제 김정은 정권이 가지고 있는 선택은 두 가지밖에 남아있지 않다.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 재개가 그것이다. 사실상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교화하는핵 개발 노력을 지속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지난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극성-3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0/26/e177d933-8db4-42ea-bedf-71badd1990d4.jpg)
북한이 지난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극성-3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궁극적으로 북한은 ‘핵 강국’으로 우뚝 서기를 바라고 있어서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핵 강국’이라 자랑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하다.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지속해야 핵 수단의 실질적인 완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시설을 파괴하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한 바 있어서 이를 쉽사리 재개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핑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경직되게 압박하고 있는 그들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요구대로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이를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전반적인 북한의 행태로 보아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ICBM 시험발사가 먼저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2년간의 은밀한 미사일 개발 노력이 반영된 보다 정교화한 ICBM 시험발사가 예정되어 준비단계에 있을 수 있다. 지난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이러한 백두산 등정 보도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을 신성시하고 이를 부각하기 위한 선전선동 술책의 하나로 단순히 치부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날 노동신문 사설에서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백두산에 오르실 때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 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고 했고, 내각 기관지 민주 조선도 정론에서 “반만년 역사의 숙원을 이룬 ‘11월 대 사변(장거리 미사일 발사)’이 조선의 강대한 힘을 온 세계에 과시한 그때”라고 한 언급은 그 특별한 의미를 미루어 짐작게 해 주는 것일 수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오는 11월, 12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가능성이 보다 큰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이날 중앙TV가 공개한 사진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가운데)·조용원(오른쪽)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말을 타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0/26/c15880cc-c9b4-442a-834c-e0cd9c1dc6ac.jp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이날 중앙TV가 공개한 사진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가운데)·조용원(오른쪽)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말을 타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백두산 등정 보도에서 장거리 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시 강화될 제재에 대비하기 위한 자력갱생 정책을 더욱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 역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사전 조치로 이해된다.
백두산 등정에 이어 삼지연군 건설장을 찾아 “적들이 아무리 집요하게 발악해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고 우리 식으로 발전과 번영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시련과 곤란을 디디고 기적과 위훈으로 더 높이 비약한 2019년의 총화”라고 강조하여 인민들에게 자력갱생을 강요하였다.
이것은 백두산 등정보도 다음 날 노동신문에 게재된 사설에서도 확인된다. 사설은 “지금 적대세력들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날뛰고 있다. 원수들과의 첨예한 대결전에서 사소한 양보나 후퇴는 곧 자멸의 길이다.”라고 하면서 “자력 부강, 자력번영의 기치를 높이” 들 것을 천명하였다. 이번 백두산 등정 보도는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 다시 한번 주민들의 충성심을 끌어내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북한은 직접협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보다 장기적 과제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핵의 완성으로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을 때까지 제재를 견뎌내면서 그들의 은밀한 핵미사일 개발을 우선하는 정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