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연기 홍콩스타 임달화, 영화 속 안내견 입양하기로

중국 배우 임달화(런다화)가 20일 노보텔 엠베서더 호텔 강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국 배우 임달화(런다화)가 20일 노보텔 엠베서더 호텔 강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쁘다! 멋있다!”
20일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며 홍콩 배우 임달화(64)가 한국말로 장난스레 외쳤다. 새 영화 ‘리틀 큐’(감독 나영창)로 서울 강남구 호텔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전날 내한한 그에게 영화사 관계자가 알려준 말이란다. 그의 한국말 공부는 영화 ‘도둑들’ 동료 배우들 이름까지 소환했다. “예쁘다, 김혜수. 예쁘다, 김해숙!” 한 자, 한 자, 발음도 정확했다. 

'도둑들'의 첸과 김해숙표 된장찌개 

7년 전 1298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의 이 범죄 액션 영화에서 그는 한국 도둑들과 마카오 카지노를 터는 중국 도둑 보스 ‘첸’이었다. 날랜 총격 액션보다 그에게 더 감탄한 건 한국 도둑 ‘씹던껌’(김해숙)과의 짧고 깊은 로맨스다. 긴박한 추격전의 찰나 뜨겁게 주고받은 그들의 눈빛을 못 잊는다.  

영화 '도둑들'에서 중국 도둑 첸(왼쪽, 임달화)이 한국 도둑 씹던껌(김해숙)을 보호하며 총격전을 벌이던 모습. [사진 쇼박스]

영화 '도둑들'에서 중국 도둑 첸(왼쪽, 임달화)이 한국 도둑 씹던껌(김해숙)을 보호하며 총격전을 벌이던 모습. [사진 쇼박스]

동갑 나이여서 더 가까워졌다는 김해숙은 촬영 당시 자신이 끓인 된장찌개를 그가 참 맛나게 먹었다고 TV 토크쇼에서 말했었다.  

“‘다장탕(大酱汤‧중국말로 된장찌개)’! (김해숙이) 레시피를 가르쳐줘서 홍콩에서 해봤는데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우리 된장찌개 얘길 한국에서 많이 아느냐”며 입맛을 다시는 임달화의 표정이 ‘첸’만큼 다정하고, ‘첸’보다 더 개구쟁이 같았다. “오기 전 (최동훈) 감독님한테도 연락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못 만나게 됐어요. 아몬드 쿠키(마카오 명물)는 사 왔어요. 전해줄 거예요.” 여전히 ‘도둑들’ 팀과 연락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배우 임달화, 김해숙, 증국상이 2012년 영화 '도둑들' 레드카펫이 진행된 코엑스 아셈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배우 임달화, 김해숙, 증국상이 2012년 영화 '도둑들' 레드카펫이 진행된 코엑스 아셈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홍콩 범죄물 실력자의 부드러운 변신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전성기를 거쳐 1990~2000년대엔 두기봉 감독 사단의 범죄물로 활약해온 그다. 악당이든, 경찰이든, 암흑가를 구르며 격투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다음 달 개봉 예정인 영화 ‘리틀 큐’에선 다르다. 그가 맡은 주인공은 시각을 잃어가는 디저트 셰프 ‘리 포팅’.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세상을 원망하지만, 안내견 큐(Q)로 인해 서서히 변화한다. 일본에서 영화‧드라마로도 제작됐던 일본 소설 『맹인안내견 퀼의 일생』이 토대가 됐다.  

영화 '리틀 큐' 한 장면. 극 중 안내견 큐는 실제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현역 활동하고 있다. [사진 미로비젼]

영화 '리틀 큐' 한 장면. 극 중 안내견 큐는 실제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현역 활동하고 있다. [사진 미로비젼]

 

이번 영화는 어떤 점에 끌렸나.  
“원래 강아지를 많이 좋아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싶었다.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되고, 안내견들과 함께 세계를 다니면서 사계절을 느끼고 접하지 못한 사물을 인식하는 기회가 생기길 바랐다. 출연작이 300편이 넘는데 이번이 제일 어려운 도전이었다.”

강아지와 호흡, NG 48번도 즐거워

영화 '리틀 큐' 에는 '열화전차' '홍콩 마스크'의 배우 양영기가 리 셰프의 동생 역할로 임달화와 호흡을 맞췄다. '동사서독' '타락천사' '양축'으로 알려진 배우 양채니도 출연했다. [사진 미로비젼]

영화 '리틀 큐' 에는 '열화전차' '홍콩 마스크'의 배우 양영기가 리 셰프의 동생 역할로 임달화와 호흡을 맞췄다. '동사서독' '타락천사' '양축'으로 알려진 배우 양채니도 출연했다. [사진 미로비젼]

눈이 점점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며 강아지와도 호흡을 맞춰야 했는데.  
“어려웠지만 극복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강아지의 컨디션에 따라 촬영을 진행했는데 항상 강아지 옆에서 말도 걸고, 달래주려 했다. 그런 강아지의 진솔한 연기 덕분에 나도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었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다 보니 강아지가 혼란이 오긴 했다. ‘왜?’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웃음). 자동차 사고가 날 뻔한 장면은 NG가 48번 났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나.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개를 키워왔다. 출생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키웠는데 늘 처음 키우던 강아지들이 환생해서 내게 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엔 강아지 시절부터 총 아홉 마리 개가 나왔는데 성견 큐 역은 단 한 마리였다. 실제 현역 안내견으로 일하고 있는데 은퇴까지 7~8년 기다렸다가 내가 입양하려고 한다. 그때쯤엔 큐가 아홉 살쯤 될 것 같다.”  

영화 속 안내견, 은퇴 후 입양할 것 

리 셰프는 충직한 큐로 인해 점점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사진 미로비젼]

리 셰프는 충직한 큐로 인해 점점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사진 미로비젼]

처음에 리가 안내견을 거부하던 장면에선 큐를 다소 거칠게 대하기도 한다.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그 촬영 후 큐가 나를 2주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뒤에 친해지는 과정이 엄청 걸렸다.”

반려견을 키워온 경험이 도움됐나.  
“물론이다. 항상 사랑으로 대하니까, 연기하면서도 진실로 느껴졌을 것이다. 촬영을 잘 해내기 위해 큐를 3주 정도 우리 집에 데리고 있었다. 큐의 냄새가 밴 영화 속 의상을 그대로 집에서 입었다. 서로 마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원래 키우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그때 큐를 좀 질투하더라.”

큐를 껴안은 리 셰프. 그의 눈은 점점 흐릿한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사진 미로비젼]

큐를 껴안은 리 셰프. 그의 눈은 점점 흐릿한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사진 미로비젼]

 
영화에선 리 셰프가 흐려지는 눈동자로 가만히 큐를 바라보는 장면 등이 인상 깊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다소 익숙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이런 진득한 감정선이 마음을 뺏는다.  
연출을 맡은 나영창 감독과 임달화는 나 감독이 프로듀서‧편집‧조연 등을 맡은 ‘흑사회’ 시리즈 등 두기봉 감독의 범죄물로 만난 오랜 인연. 임달화는 “나 감독이 성장하는 걸 봐왔다”며 “그가 사람의 감정에 대한 디테일을 잘 그리는 데 반했다”고 했다.

느와르 인생 40년, 두기봉 영화 최고작은

중국 배우 임달화(런다화)는 40년 지기 두기봉 감독과의 최고작을 묻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국 배우 임달화(런다화)는 40년 지기 두기봉 감독과의 최고작을 묻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흑사회’ ‘익사일’ ‘스패로우’ 등 대표작을 함께한 40년 지기 두기봉 감독과의 최고작을 스스로 ‘PTU’(2003)라 꼽는 이유도 비슷했다. “적은 대사로도 심리적으로 다 표현해냈기 때문”이라는 것. 그가 홍콩 경찰기동부대로 분한 이 영화는 동료 형사가 야쿠자와 격투 중 잃어버린 총을 찾아 나선 범죄 액션물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녹여내 홍콩금자형상에서 그의 남우주연상, 작품상 등 6관왕, 대만 금마장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시애틀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말보단 진한 감정. 전성기 시절 홍콩영화가 계승해온 유산이다. 그러나 홍콩 영화계도 많은 것이 변해왔다.  

두기봉 감독과 배우 임달화의 또 다른 대표작 '흑사회'(2005). [사진 케이알컨텐츠그룹

두기봉 감독과 배우 임달화의 또 다른 대표작 '흑사회'(2005). [사진 케이알컨텐츠그룹

“중국은 시장이 워낙 크니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같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홍콩시장은 좁아서 비상업적인 영화가 많이 나오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래도, 연기자로서 앞으로도 감동적인 영화를 많이 찍으려 합니다.”

괴한 피습 후 재활 "트라우마 있겠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손에 파란 고무찰흙을 쥐고 있었다. 지난 7월 중국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괴한에 피습당했을 때 다친 손의 신경을 회복하기 위한 재활치료의 일환이라 했다. “많이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트라우마는 있겠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사람은 앞을 보고 살아가야죠.”

임달화는 지난 7월 괴한의 피습 후 부상당한 손의 신경을 재활치료 중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임달화는 지난 7월 괴한의 피습 후 부상당한 손의 신경을 재활치료 중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강직함은 경찰이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열네 살 때 순찰 도중 순직했다.  

“아버지는 시간개념을 엄격하게 가르치셨고 자기 직업에 대한 열정이 꼭 있으라, 하셨어요. 지금도 아버지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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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