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 7월 시작한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국내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망이다. 일본이 공식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화의 길을 열어두면서 협상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다.

22일 일본 NHK와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다 요이치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은 “한국이 수출규제 개선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대화를 실시하기로 했다”며 “한·일 간 건전한 수출실적의 축적 및 한국 측의 적정한 수출관리 운용을 위해 (규제대상 품목과 관련한) 재검토가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에 나섰는데, 우리가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면 수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 7월 안보상의 이유로 액체와 기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를 한국에 수출할 때 ‘개별허가’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들이 대량 살상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날 양국의 발표 이후 한일 양국은 실무자와 국장급 간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수출 절차를 다시 심사해, 안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해당 품목을 규제가 덜한 ‘포괄허가’로 돌리는 식으로 규제를 풀 것이라는 게 산업부의 관측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이 바로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에 한국을 다시 포함하거나 '수출규제 완전 철회'를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수출규제를 단행한 3개 품목에 대한 개별심사는 그대로 유지하며, 화이트국가 제외 조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갈등이 정치·외교·역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이라 원상 복원에는 시간이 걸릴 예상이다.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날 취재진을 만나 “수출규제 철회를 위한 '토대'가 마련이 됐다고 생각이 된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밝힌 배경이다.


한편 이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조건부'로나마 유예되면서 이를 둘러싼 경제 불안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실 지소미아는 안보 분야의 협정인 만큼, 당장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사 갈등이 무역에 이어 안보 분야로까지 확대되면서, 결국 한일 간의 문제가 한미 간의 문제로 번졌던 상황”이라며 “조건부이긴 하지만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5대 그룹 고위 관계자도 “사실 지소미아 문제는 일본보다는 미국이 관세 부과 같은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걱정이 컸다”면서 “다만 일본의 수출 규제가 풀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들끓던 한·일 경제전쟁도 한동안은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지소미아 유예를 위해 그간 일본에도 적잖은 공을 들였는데, 한국에서처럼 일본에서도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경제적 우려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며 “결국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지소미아 유예로 방향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일 간의 강 대 강 대립, 한·미 간의 갈등이 장기화해 한국 경제가 위축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면서 “조건부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일단 이런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렸다는 점에서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간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던 환율·주가 등 금융시장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2조2148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도 4일 연속 하락세(환율 상승)를 이어갔다. 미·중 무역갈등 격화와 지소미아 종료가 맞물린 결과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치·외교 문제를 떠나서 순수하게 투자 측면에서만 분석했을 때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게 움직이는 국가들의 주가 흐름이 좋다”며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이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손해용·김도년 기자 sohn.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