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지만, 명절이면 늘 인천공항은 해외 여행객으로 북적입니다. 주말이면 국립공원·박물관·극장 주차장에선 차 세울 곳을 찾아 헤매고 펜션은 당일 예약은 꿈도 못 꿉니다. 이쯤 되면 '지금 경기가 어려운 게 맞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저성장 속에서도 '여가'의 가치가 소중해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풍경입니다.
이런 '여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향유하고 있을까요?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라면 문화생활도 모든 국민이 골고루 누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중앙일보는 지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된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통해 월급 100만원 미만 저소득층과 6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문화생활 수준과 만족도를 분석했습니다.
저소득층도 여행자 비중 두배 늘어…여가 만족도 높아져
저소득층의 문화생활 수준은 8년 전보다 분명히 나아졌습니다. 월급 1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의 지난 1년간 해외여행 경험자 비중은 2011년 5.9%에서 올해 10.9%로 두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8년 전에는 저소득층 100명 중 6명 정도가 해외여행을 했다면, 올해는 그 인원이 11명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콘서트·영화관·야구장 등에서 문화·예술·스포츠 활동을 즐긴 저소득층 비중도 2011년 23.1%에서 올해 29.3%로 늘었습니다.
여행·문화생활 빈도가 늘어서인지 저소득층의 여가 생활 만족도도 높아졌습니다. 저소득층이 '여가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중은 2011년 10.8%에서 올해 16.3%로 5.5%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반면 여가 생활에 불만을 표시한 사람의 비중은 같은 기간 41.7%에서 37%로 줄었습니다. 지갑은 가벼워도 여가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3만달러 시대의 '문화 격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고소득층 문화 수준은 더 높아져…'문화 격차'는 커져
하지만,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문화생활 수준이 훨씬 높아지다 보니 '문화 격차'는 더욱 커졌습니다. 고소득층 가운데 지난 1년간 해외여행을 경험한 사람의 비중은 2011년 39.9%에서 올해 51.9%로 증가했습니다. 저소득층 10명 중 1명이 해외여행을 했다면, 고소득층은 둘 중 한 명은 이를 경험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3만달러 시대의 '문화 격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고소득 계층 중 문화·예술·스포츠 콘텐트를 경험한 사람의 비중도 2011년 81.8%에서 올해 85.9%로 증가했습니다. 저소득층은 10명 중 7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영화관 근처에도 못 가고 있는 현실과는 상반됩니다. 저소득 계층 가운데 문화·예술·스포츠 콘텐트를 경험한 사람의 비중은 2011년 23.1%에서 올해 29.3%로 올랐지만 여전히 30%를 밑돕니다.
3만달러 시대의 '문화 격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책·신문 읽는 사람은 모든 소득 계층에서 감소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격차가 좁혀지는 부분이 있다면, 책과 신문을 읽는 사람의 비중입니다. 저소득층 중 지난 1개월간 신문을 읽은 사람의 비중은 올해 33.7%로 고소득층(85.3%)과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격차는 2011년 54.4%포인트에서 올해 51.6%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독서인구'의 격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계층 간 격차는 2011년 53.9%포인트에서 올해 44%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사실 이는 책·신문을 읽는 사람이 모든 소득 계층에서 감소한 영향이 큽니다. 활자 매체를 '읽는 시대'에서 유튜브·넷플릭스 등 영상 매체를 '보는 시대'로 바뀌는 현상은 소득 계층 구분 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만달러 시대의 '문화 격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골프장 이용 경험도 소득 계층 간 격차가 줄었습니다. 저소득층은 과거나 지금이나 1% 안팎의 인원만 골프장을 이용한 적이 있지만, 고소득층의 이용 비중은 2011년 19.4%에서 올해 14.7%로 줄다 보니 나타난 현상입니다.
3만달러 시대의 '문화 격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문화 격차'는 소득 양극화의 결과…정책 바로 잡아야"
전문가들은 '문화 격차'는 소득 양극화의 '거울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주력 산업 부진으로 민간 일자리가 줄고, 현금성 복지 등 각종 재정 지원이 중산층 이상에도 지원되는 등 소득 양극화가 커진 결과 문화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문화생활 수준을 엿볼 수 있게 되면서 계층적 위화감도 커질 수 있습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가 항공권과 무료 전시·공연 등 공급 측면에서 저가 상품이 늘어 저소득층도 문화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됐지만, 소득 양극화가 더 벌어지다 보니 저소득층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양극화 해소에 실패한 경제 정책에 대한 반성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 숫자의 이면에는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