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1200명을 넘어선 날이기도 한 이날 ‘마포 5인 회동’에는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 대표 특보단장과 홍영표·김종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당내 86그룹의 대표 격인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말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주도했다. 민주당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윤 총장은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총괄하는 이해찬 대표의 최측근이다. 전 의원은 친문 성향의 의원 모임인 ‘부엉이모임’의 좌장 격이다. 홍 의원은 직전 원내대표로 지난해 4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전 의원과 홍 의원은 유력한 차기 당 대표 후보로 분류된다. 김 의원은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사로 선거법 개정 협상을 주도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과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최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비례민주당’ 논의는 그간 당 일각에서 불가피론이 나오긴 왔지만 당 지도부의 추진 의사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비례당 좋은데 명분이 문제” “명분은 만들면 돼” “잘해보자”

비례정당 관련 기존 민주당 입장
전해철 의원은 “명분이 문제”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가 왜 비례정당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세울 간판(명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참 이거…”라고 했다. 그러자 김종민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래통합당이 지금 연동형 비례제의 의미를 완전히 깨부수고 있는데, 그렇게 땀 빼가면서 공들인 선거법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점을 앞세우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않느냐”며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하지만 비례정당을 만든다고 나갔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직 모른다.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들의 대화 중엔 목소리를 식별하기 어려운 한 참석자가 “(미래통합당이) 탄핵 이야기를 하니까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도 들렸다.

’꼼수정당“→’뜻 모였다“, 입장 바꾼 민주당.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특정하기 어려운 한 참석자는 “비례 정당이 만들어져도 또 고민해야 할 게 있다”며 “우리가 먼저 비례 공천을 한 다음에 상황을 봐서 그쪽(비례 정당)으로 사람을 보내야 하는지 등도 문제”라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영입 인사 중 일부가 탈당해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리도 나왔다. 전 의원이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전체 비례대표 47석 중) 17석(병립형)과 30석(연동형)도 안 되는 거였고, (연동형) 비율을 더 낮췄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참석자는 “그 얘기까지 지금 하면 진짜 큰 싸움 난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그때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느냐”며 “그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격론을 마무리한 건 윤 총장이었다. 그는 “우리의 뜻이 확인됐으니 선거법 협상을 맡았던 김종민 의원이 어떤 방향이 돼야 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까지 다 고민해 다음주에 발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윤 총장은 “모두의 뜻이 모인 것으로 합의하고 한번 잘 해보자”고 했다.
◆가능한 시나리오들=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한다면 크게 봐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5인이 논의했듯, 우선 직접 창당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미래한국당을 만든 방식이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민주당이 전담한다. 비례대표 전체 47석 중 미래한국당이 절반 넘게 가져가는 걸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간 민주당이 “종이 정당, 창고 정당, 위성 정당. 그래서 가짜 정당”이라고 비난했던 통합당·미래한국당의 노정(路程)을 민주당도 되풀이해야 하는 게 부담이다. 의원 꿔주기부터 말이다.
둘째, 외부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자매정당화하는 방식도 있다. 민주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선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에 투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의당·녹색당 등 기존 정당은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이 창당한 정당도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 경우 고려사항이 많은데, 우선 민주당이 후보를 낼지다. 안 낸다면 사실상 비례정당이란 비판을 받을 테고, 낸다면 민주당도 당선자를 내야 하니 일정 정도 득표해야 한다.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기도 어려워 연대 세력으로 표의 이전(移轉)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몇 석 얻자고 명분을 잃는 격”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당선권에 어떤 비례대표 후보를 어느 정당으로 낼지도 쟁점일 수 있다. 외부 세력이 민주당의 뜻대로 움직일지도 미지수다.
고려 사항은 또 있는데, 범여(汎與)가 강행 처리한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대단히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민주적 심사 절차와 민주적 투표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중앙선관위는 “회의록, 당헌·당규 등 민주적 절차에 따라 추천됐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등록을 수리하지 않는다”며 “이를 어길 시 해당 정당의 모든 후보자 등록을 무효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다음달 26~27일 후보 등록 때까지 창당→공천관리위 구성→후보 공모→투표의 전 과정을 마치기엔 촉박하다. 그래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관리위원장인 우상호 의원은 “명분도 없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임장혁·정진우·윤정민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